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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쓰는詩

안영선-빨래를 널다

by 안영선 2011. 7. 23.

 

 

빨래를 널다

 

안영선

 

황사주의보를 안고 거실로 들어선다

문득 눈 끝이 머문 식탁

춘곤의 기지개로 손짓하는 아내의 필체

숨겨진 보물을 찾는 아이처럼 세탁기를 향한다

주인도 없는 사이

거친 숨을 몰아쉰 흔적이 하수구 거품으로 남았다

세탁기 속에는 아내와 딸

아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있다

그 사이 내 팔 하나는 아내의 바지 속에

다리 하나는 아들의 태권도복과

딸아이의 브라우스 사이에 끼여 있다

배시시 웃음이 묻어난다

서로가 묶고 묶는 일상의 연결 고리

그 관을 따라 끈적대는 정이 흐를 것이다

하나가 둘이 되고

또 다시 넷이 되는 소박한 섭리

두 팔로 가족들을 안고 거실로 나온다

튼실한 줄기에 앙상한 가지로 뻗은 고목

그 나무에 자꾸 잎이 돋아난다

가지에 잎으로 걸터앉은 아내와 딸아이

금강권으로 한껏 품을 잡은 태권소년

그 좁은 틈을 비집고 내 무좀의 흔적도 자리를 잡는다

 

오늘도 익숙하게 가족의 일상을 넌다.

 

- 2007년 경기문화재단 [사이버문학상] 입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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