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를 널다
안영선
황사주의보를 안고 거실로 들어선다
문득 눈 끝이 머문 식탁
춘곤의 기지개로 손짓하는 아내의 필체
숨겨진 보물을 찾는 아이처럼 세탁기를 향한다
주인도 없는 사이
거친 숨을 몰아쉰 흔적이 하수구 거품으로 남았다
세탁기 속에는 아내와 딸
아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있다
그 사이 내 팔 하나는 아내의 바지 속에
다리 하나는 아들의 태권도복과
딸아이의 브라우스 사이에 끼여 있다
배시시 웃음이 묻어난다
서로가 묶고 묶는 일상의 연결 고리
그 관을 따라 끈적대는 정이 흐를 것이다
하나가 둘이 되고
또 다시 넷이 되는 소박한 섭리
두 팔로 가족들을 안고 거실로 나온다
튼실한 줄기에 앙상한 가지로 뻗은 고목
그 나무에 자꾸 잎이 돋아난다
가지에 잎으로 걸터앉은 아내와 딸아이
금강권으로 한껏 품을 잡은 태권소년
그 좁은 틈을 비집고 내 무좀의 흔적도 자리를 잡는다
오늘도 익숙하게 가족의 일상을 넌다.
- 2007년 경기문화재단 [사이버문학상] 입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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