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詩읽기

[박완호] 축제

안영선 2009. 8. 4. 12:09

축제 / 박완호

 

 

 

유희는 이미 시작되었다.

고깃덩어리를 물고 있는 개의 아가리에서

흘러내린 타액이 바닥에 고여 갈 때

황금 신전의 이마에서는

단발마 같은 햇살이 번뜩이고

은행나무 가지들은

들고 있던 紙錢들을 흔들어대며

노을에 몸을 적셨다.

貧者의 월요일이 시작되자마자

비만으로 탱탱해진 도시의 한쪽에서는

성대한 파티가 열리고

일상의 뒷전에 팔짱 끼고 서 있던

여관의 입간판들이 원색의 속살을 뽐내며

어두운 한낮을 밝히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들이

악취 나는 자궁을 열어

불감증의 도시를 절정으로 몰아가고

황홀을 잃어버린 쾌락의 使者들이

모든 집의 창을 기웃거렸지만

축제가 한창인 도시의 어디에서도

황홀은 보이지 않았다.

 

시집 『아내의 문신』(문학의전당, 2008) 중에서

웹진 시인광장 선정 2009년 올해의 좋은 시 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