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詩읽기
[이은규] 툭,
안영선
2009. 8. 4. 12:39
툭, / 이은규
―떠나가는 모든 것들은 소리로써 제 숨을 거두어간다
빛줄기 하나 텅 비어 바닥을 향해있다
못이 박혀 있던 자리에 남은 구멍
여백을 견디던 벽에게 못은 무엇이었을까
한 점으로부터 출발했을 여백
벽에 구멍을 낸 것도 막고 있던 것도 못이었다
어떤 중심은 돌출일 뿐
그러므로 벽과 못은 상극일까
중심이었을 때조차 못의 허기는 허공에 닿아 있었다
꽃의 낙화가 허공에 예정되어 있는 것처럼
떠 있는 것들에게 가장 불편한 이름, 허공
떨어지기 직전 가장 뾰족했을 못의 촉수
중심을 견디던 내부의 힘으로
툭, 못이 가까스로 잡고 있던 벽을 놓친다
오래된 견딤일수록 결별의 시간은 짧고
툭, 심장을 가까스로 잡고 있던 마음을 놓친다
마지막 소리로 제 숨을 거두어가는 것들
흩날리는 꽃을 보는 나무의 그늘이 깊다
지친 독이 못에 퍼져있다, 푸른 전갈
바람 한 필 걸어둘 수 없는 벽과
다시는 너라는 중심에 박히지 않겠다는 마음 사이
닿을 소식은 닿는다 바람으로라도
툭, 멀리서의 부음이 떨어진다
좋은 소식도 나쁜 소식도 없다 다만 소식이 있을 뿐
푸른 전갈, 감은 눈 속으로 번지는
2008년 『시에』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