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詩읽기

[박후기] 겨울 수숫대

안영선 2009. 8. 4. 12:41

겨울 수숫대 / 박후기

 

 

 

나만 멀쩡해서 미안한

밤이다 혼자 살아남아서

더 아픈 밤이다

한 시절 나란히 살다

죽을 때도 같이

갈 줄 알았다

네가 살아남았다 한들

마음 불편하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두운 하늘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아

고개 숙인 별,

버릇은 여전하구나

네가 벗어놓은 끈

풀린 신발은 아직도

정든 두둑에 놓여 있는데,

어쩌자고 나는

너를 먼저 보내고 밤새

바람의 조문을 받는 것이냐

속 꽉 찬 슬픔의 무게는

왜 이리 가벼운 것이냐

 

월간 『현대문학』 2008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