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詩읽기
[이은규] 애콩
안영선
2009. 8. 4. 13:09
애콩 / 이은규
어느 마을에선 완두콩을 애콩이라 부른다
덜 여문 것들에게선 왜 날비린내가 나는지
푸른 날비린내가 나는 이름, 애콩
생의 우기雨期를 건너다 눅눅해져 애를 태우는 것들
엄마는 왜
이 밤에 콩을 까실까, 콩을
불도 안 켜고
꼬투리를 세워 깍지를 열었는지
텅 빈 시간 몇 알 후둑, 후두둑
그릇 위로 떨어지는 소리 들린다
잠시 한숨을 고르고
알맹이들을 한쪽으로 쓸어 모으는 손길
알맹이라 착각하고 싶은 둥근 시간들이
꼬투리라는 최초의 집을 떠나면
차오른 허공을 바라보며 허부렁해질 저 꼬투리
열린 방문 사이로 말없이 묻는다
엄마는 왜
이 밤에 콩을 까, 콩을
문틈의 빛줄기 너머로 말없이 들린다
잠이 안 와서, 잠이
철없는 애콩이
꼬투리 잡힐 과오들을 푸르름이라 착각하며
날비린내의 몸을 말아 둥글게 누워 있다
최초의 몸이면서 집인 콩꼬투리
덜 여문 날들을 다독이느라 푸른 물이 들었을 손
그 손이 인기척도 없이 방문을 닫는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
나는 닫힌다. 한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