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詩읽기
[김명희] 귀걸이가 있는 풍경
안영선
2009. 8. 4. 13:28
귀걸이가 있는 풍경 / 김명희
소리의 방죽에 구멍이 뚫렸다,
전부터 미뤄 왔던 내 오랜 망설임이 무너지고
잠깐 동안 양미간이 무너져 내리는 사이
나의 귓불을 몇 번 더듬적거리던 미용실 점원이 쿡,
소리의 한켠이 순간 화끈거리기 시작한다.
바늘이 통과한 깊이만큼 다리를 절며 들어오는 소리들
귀를 뚫는 일은, 소리의 모서리에 이정표 하나 세우는 일이다
둑 이쪽과 저쪽에 일상의 오솔길 하나 내는 일이며
청각의 농사만 경작했던 곳에 작은 사찰 하나 건축하는 일이다
예리한 통증과 맞바꾼 장식물을 손끝으로 확인하며
꾹 다문 입으로 방금 뚫린 거울 속을 갸웃 살핀다.
화농의 깊이로 젖었다가 귓속으로 들어오는 소리들
상처를 통과한 소리들은 뾰족하거나 날카롭다
화끈거리는 귀 언저리에 연고가 발라지고
당분간은 덧나기 쉬운 풍경에 하루 두 번씩 소독을 해야 한다
아침마다 수화기 저쪽으로 방류했던 무료함이 단속되고
얼마간은 소리의 농사도 흉년이 될 것이다
내 부주의함이 아직은 덜 아문 설법을 건드릴 때마다
방심에 찔린 듯 거울 앞으로 황급히 다가설 것이다
입 안 가득 얼얼한 침을 천천히 삼키며
인화성 짙은 여름, 조금은 미묘한 화엄(華嚴)의 거리로 나선다.
김명희 : 경기 양평 출생.
2006년 《한라일보》신춘문예 당선.
2008년 《시와시학》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