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詩읽기

[공광규] 놀란 강

안영선 2009. 8. 19. 16:51

놀란 강 / 공광규

 

 

강물은 몸에

하늘과 구름과 산과 초목을 탁본하는데

모래밭은 몸에

물의 겸손을 지문으로 남기는데

새들은 지문 위에

발자국 낙관을 마구 찍어대는데

사람도 가서 발자국 낙관을

꾹꾹 찍고 돌아오는데

그래서 강은 수 천리 화선지인데

수만 리 비단인데

해와 달과 구름과 새들이

얼굴을 고치며 가는 수억 장 거울인데

갈대들이 하루 종일 시를 쓰는

수십 억 장 원고지인데

그걸 어쩌겠다고?

쇠붙이와 기계소리에 놀라서

파랗게 질린 강

 

공광규 시인 : 충남 청양 출생

1986년 《동서문학》에 「저녁」등 5편이 당선되어 등단함.

시집으로 『대학일기』,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지독한 불륜』등

2009년 《윤동주상 문학상》 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