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詩읽기

[박후기] 크레바스

안영선 2010. 4. 8. 22:05

크레바스 / 박후기



아스팔트 도로가 폭삭 주저앉았다.

지나가던 자동차가 구덩이 속으로 처박혔다.

집중호우 때 생긴 틈으로 물살이 파고들었고,

아스팔트를 떠받치고 있던 흙과 자갈이 떠내려갔다.

아스팔트 포도는 한 동안 공중에 떠 있었다.

자동차는 그곳이 바닥인 줄 알고 달렸다.


빙산은 물 위에 떠 있고,

대륙은 맨틀 위에 떠 있다

나는 가끔 발아래가 의심스럽다


저수지 중앙은 얼지 않았다

저수지가 숨을 쉴 때마다 물안개가 피어올랐고,

물고기들은 얼음장 밑에서 행복했다.

나는 아파트 7층에 산다


고상돈은 매킨리 봉 크레바스에 빠져 죽었다.

자일에 매달려 날개가 꺾인 채 발견되었다.

나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사는 것인지,

올라가기 위해 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새들이 나는 곳이 모두 하늘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