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詩읽기

[유종인] 촉지도(觸地圖)를 읽다         

안영선 2010. 4. 8. 22:14

촉지도(觸地圖)를 읽다 / 유종인                  



휠체어 리프트가 선반처럼 올라간 뒤

역 계단 손잡이를 가만히 잡아본다

사마귀 그점자들이 철판 위에 돋아있다


사라진 시신경을 손 끝에 모은 사람들,

입동(立冬) 근처 허공 중엔 첫눈마저 들끓어서

사라진 하늘의 깊이를 맨얼굴로 읽고 있다


귀청이 찢어지듯 하행선 열차소리,

가슴 저 밑바닥에 깔려있는 기억의 레일

누군가 밟고 오려고 귓볼이 자꾸 붉어진다


나무는 죽을 때까지 땅 속을 더듬어가고

쉼없이 꺾이는 길을 허방처럼 담은 세상,

죄 앞에 눈 못 뜬 날을 철필(鐵筆)로나 적어 볼까


내안에 읽지 못한 요철(凹凸)덩어리 하나 있어

눈귀가 밝던 나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몸,

어머니 무덤마저도 통점(痛點)의 지도(地圖)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