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詩읽기

[박후기]-복서 2

안영선 2010. 10. 26. 22:50

 

 

 

 복서 2 / 박후기

 

 

 

 

  지구의 스파링 파트너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삭월의 눈앞이 캄캄해진다 


  아들3은 실업자,

  나비처럼 날아도 벌처럼 쏠 데가 없다

  오늘도 집안을 겉돌며 눈치만 살핀다

 
  꼭두새벽 집을 나서는 엄만

  정류장까지 로드워크를 한다

  아버지가 녹아웃 된 후

  대신 엄마가 장갑을 끼고 매일

  지옥의 링 위로 올라간다

 
  아들3은

  품속에 카운터블로를 숨긴 채

  결정적인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달과 엄마처럼

  숨죽이며 참고 견딘다

 
  탐색전이 지나치면

  식구들의 야유를 받는다

  나가 싸우지 않는 아들3을 향해

  아들1이 경고를 보낸다

  도대체

  누가 敵인지 알 수 없는 세상이다

 

  사랑했다고 치자,

  아들1과 한 여자가

  링 위에서 엉겨 붙는다

  사랑도 결국

  사람과 무관한 일이 되어 버린다

 
  때리는 者와 맞는 者,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그로기 상태에 빠진 생이여

  너에게 확,

  수건을 던지고 싶다

 

  

 

  월간 『현대시』 2010년 5월호 발표

   

 

 박후기 시인

 1968년 경기도 평택에서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 200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내 마음의 무  늬〉 외 6편의 작품을 발표하며 등단.시집으로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실천문학사, 2006)와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창비, 2009) 가 있음. 2006년 제24회 신동엽창작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