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詩읽기

[이은규]-살별

안영선 2010. 10. 26. 23:28

 

 살별 / 이은규

 

 

 

 

  혜성의 숨겨진 이름은 살별

  서로의 살에 별이 뜨는 순간

  궤도를 이탈한 별들은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않았을까

  살별이 뜰 확률은

  핵과 먼지와 얼음이 섞여

  섭씨 57도의 온도가 되었을 때 가능하다는 가설

  궤도를 이탈할수록

  비늘처럼 떨어지는 먼지들로 별의 꼬리는 자꾸 길어졌다

  움직이는 방향의 반대쪽을 향해있는 꼬리

  서로의 꼬리를 보지 못했으므로

  그런 건 없다고 믿어버린 별들은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않았을까

  이국의 먼 나라에서

  살별은 오랫동안 흉조의 상징이었다

  그런 날 사람들은 꼭꼭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재앙은 문틈으로 미풍처럼 오는데

  시간이 흐르고

  살별의 자리는 서로의 환부가 된다

  궤도 내로 다시 진입한 별들은 다른 별을 만나거나

  궤도이탈을 위해 끊임없이 떠돈다는 것

  종종 환부를 기억하다 스스로, 먼지가 되는 별도 있다

  신의 마음을 알고 싶다는

  어느 과학자가 정설이라는 듯 말했다

  혜성은 밝고 총명한 마음을 가진 별이다

  가설과 정설 사이를 망설이는, 별 하나

 

  

 

 계간 『문학들』 2009년 겨울호 발표

 

 

 

 이은규 시인

 

  1978년 서울에서 출생. 광주대 문예창작과 및 同 대학원 졸업. 2006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어 등단. 2008년 《동아일보》 시부문에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