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쓰는詩
안영선-조문弔問을 하다
안영선
2011. 7. 23. 07:18
조문弔問을 하다
안영선
익숙한 발신번호가 폭설을 헤집고 나와
휴대전화에 낯익은 이름을 넣어 문장을 보내왔다
사인死因은 뇌출혈이란다
내 옷장 속에는 특별히 준비된 검은 일상이 있다
애도의 표정을 한 검은 넥타이를 매고
저녁노을이 비껴간 계단을 따라 오른다
지하 주차장에서 영안실까지 늘어선 사물들이
자주 인사를 나누던 지인처럼 낯설지 않은 것은
일상이 사십을 넘어섰기 때문이리라
3층 연화실蓮花室 앞, 두 생을 잇는 복도에는
망자의 이력 몇 개가 상주처럼 조문을 받고 있다
게 중에는 다른 이의 이력으로 몇 날 몇 시간을 살았을
힘없는 꽃송이도 더러 섞여 있을 게다
국화실의 수많은 이력에 한마디씩 내뱉으며 흉을 보던 이들도
연화실 앞 단출한 이력에는 혀를 찬다
이력 너머에서 생의 먼지를 털며 피어오르는 향합香盒
그 앞에서 죽은 이와 함께한 이력을 쏟아놓으며
그림자 몇이 향연香煙에 맞춰 어깨를 흔들어대다
조문객을 맞은 영정은 무표정하게 답례를 한다
물끄러미 영정을 바라본다 가끔은
밝게 웃는 모습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입안에서 자꾸 맴을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