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야기

[용인 문학순례길을 걷다] 둘, 육당이 영랑을 만나 완서의 소설을 읽다

안영선 2013. 1. 14. 08:14

 

문학순례길,

 

육당이 영랑을 만나 완서의 소설을 읽다

- 포은 정몽주 묘역에서 천주교용인공원묘원으로 순례길

 

안영선(용인문학 편집주간)

 

20120828() 16:09:18 용인신문 webmaster@yonginnews.com

 

 

포은의 단심가를 만나다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능원리. 문수산 자락에 있는 포은 정몽주(1337~1392) 묘역을 용인 문학순례길을 걷다2코스 출발점으로 삼았다. 1코스인 용인공원묘원에서는 약 15km의 거리에 위치해 있어 차량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용인시는 이곳 묘역을 중심으로 매년 정몽주의 정신을 기리는 포은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용인문화원이 주관하는 포은문화제는 용인종합운동장에서 통일공원까지, 능원초등학교에서 행사장까지 이어지는 천장 행렬과 추모 제례, 백일장, 사생대회 등을 주요 행사로 진행하여 용인 시민을 위한 대표적인 문화 행사로 자리 잡고 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선생의 곧은 정신이 깃든 시조 단심가는 조선 건국의 주역인 이방원의 하여가와 문답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고려의 마지막 충신으로 충절의 상징이 된 정몽주가 개성 선죽교에서 이방원의 부하에 의해 살해된 후 고향인 경북 영천에 묻히지 못하고 용인에 잠들게 된 것은 천장 행렬이 지금의 풍덕천동에 이르렀을 때 회오리바람에 명정이 날려 지금의 능원리 묘역에 떨어졌기 때문이라 한다.

 

능원리 묘역 입구의 정몽주 시조비 단심가

 

능원리 묘역 입구에 도착하면 19865월에 세운 시조비 단심가가 순례객을 맞는다. 시비를 돌아보고 포은교를 건너 능원로를 따라 500m 남짓 걸으면 포은 선생의 묘역을 만난다. 이미 오래전에 성역화 작업이 이루어져 그 규모가 제법 크다. 재실(齋室)인 영모재(永慕齋)를 지나 묘소로 발길을 옮기면 오석에 새긴 정몽주의 시비 단심가와 포은 선생의 어머니가 지은 시조 백로가를 새긴 문학비가 넓은 묘역을 지키고 있다. 포은 묘역 옆에는 조선 전기의 문신인 지헌 이석형의 묘가 있어 함께 돌아보는 것도 순례길의 재미를 더해 준다.

 

육당과 영랑, 한국의 현대시를 꿈꾸다

 

포은 묘역을 벗어나 모현면 오산리 무등치 산자락에 있는 천주교용인공원묘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능원리 포은 묘역과는 약 5.6km의 거리에 있어 오전에 포은 묘역을 돌아본 후 여유를 갖고 마을길을 따라 걸으면 한 시간 반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천주교용인공원묘원은 서울대교구가 1967년에 조성한 천주교 신자들을 위한 묘역인데, 이곳에서 한국 현대시 100년의 출발점이 된 육당 최남선과 시문학파의 중심이 된 영랑 김윤식, 현대 소설의 금자탑을 이룬 소설가 박완서와 자살로 삶을 마감한 수필가 전혜린, ‘63세대작가군으로 불리며 사실주의 작품을 주로 발표하다가 젊은 생을 마감한 소설가 김소진을 만날 수 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용인공원묘원에 있는 육당 최남선 묘소

 

관리사무소에서 최남선골로 불리는 육당 최남선(1890~1957)의 묘소까지는 약 800m이다. 천주교 성직자 묘역을 지나면 삼거리에서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안온한 시인의 묘소를 만난다. 합장묘 앞 비문에는 기미 독립선언서의 기초자라는 문구가 선명하며 독립선언서 전문을 새겨 놓은 비석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최남선은 190811월 잡지 소년을 창간하고 신체시로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여 한국 현대시를 태동시킨 선각자로 불린다. 한 때 친일 행적으로 오명을 남기기도 했지만 그의 문학적인 업적은 우리 문학사에 한 획을 긋기도 했다. 그런 위대한 작가가 용인에 잠들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벅차오르는 일이 아닐까?

 

1930년대 시문학을 통해 순수서정시를 이끈 시인 김영랑(1903~1950)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전남 강진에서 태어난 김영랑은 휘문고보를 거쳐 일본 유학 후 귀국한다. 1930년 박용철·정지용 등과 함께 시 전문지시문학을 창간하고,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등의 서정시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전개했다. 서울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던 김영랑은 6·25전쟁 중에 사망하여 남산에 가매장 후 망우리공원묘지에 이장했다가 유가족에 의해 다시 이곳으로 이장되면서 용인과 인연을 맺었다.

 

 

 서울 망우리공원묘지에서 이장한 김영랑 묘소

 

김영랑의 묘소는 최남선의 묘소에서 100m 남짓한 거리에 있다. 사조산업 묘역이 있는 방향으로 걷다보면 작은 샛길 옆으로 두 개의 묘가 나란히 있는 시인의 묘를 발견할 수 있다. 묘비에는 문학 관련 기록이 없기 때문에 스쳐 지나기가 쉽다. 철쭉꽃이 활짝 피어 작은 울타리를 이루고 있는 모습에 정감이 간다.

 

현대소설의 정점을 찍은 박완서와 비운의 작가 전혜린

 

우리나라 사람 중에서 박완서 작가의 소설을 한편도 읽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박완서는 대중적인 인기와 문학성을 모두 갖춘 뛰어난 작품들을 많이 발표했다. 40대의 늦은 나이에 장편소설 나목여성동아현상 공모에 당선되면서 문단 활동을 시작한 후 20년 동안 많은 작품을 발표하며 현대소설의 중심에 우뚝 섰다. 박완서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에 올리며 엄마의 말뚝 2로 이상문학상을, 꿈꾸는 인큐베이터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많은 수상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투병 중인 가운데도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2010)를 출간하는 등 문학적 열정과 사명감을 다하며 안타까운 생을 마감했다.

 

 

소박하고 순수하게 단장한 소설가 박완서의 묘소

 

소설가 박완서의 묘소는 공원묘원의 중심도로에서 염신부골로 불리는 골짜기를 따라 오르는 것이 좋다. 100m 남짓 오르면 막다른 도로가 나오는데, 여기서 다시 왼쪽 도랑을 따라 약 100m 정도를 더 오르면 계단처럼 이어진 묘소 속에서 소박한 작가의 묘소를 만날 수 있다. 20여 년 전에 사망한 남편의 묘 옆에 나란히 누운 모습이 더 없이 다정스럽게 느껴진다. 빛바랜 묘비에는 ‘2011. 1. 22’라는 작가의 사망일자만 작가의 미소처럼 환히 빛나고 있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용인공원묘원에 있는 수필가 전혜린 묘소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 작가로 잘 알려진 전혜린의 묘소는 박완서의 묘소에서 약 7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박완서의 묘소에서 아래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배수로가 나오는데, 그 건너 쪽에서 전혜린의 묘소를 만날 수 있다. 안양시(시흥군)에서 이장한 전혜린의 묘소는 봉분이 일반 묘소에 비해 3분의 1 정도로 매우 작다. 묘소 주변에는 역시 이장한 것으로 보이는 작은 봉분들이 모여 있었다. 그래서일까, 더 애잔한 마음이 들어 안타깝기만 하다. 전혜린의 묘소에는 묘비가 하나 있는데, 묘소를 이장하면서 함께 옮겨온 것이다. 이 묘비는 그녀의 사후 일 년 후인 19669, 성균관대학교 독문학과 제자들이 세운 것으로 묘비에는 전헤린, 193411일에 나서 1965110일에 가다라고 새겨져 있다. 그녀의 이름이 전혜린이 아닌 전헤린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은 그녀 스스로 전헤린이라는 이름을 즐겨 사용했기 때문에 제자들이 묘비를 세울 때 전헤린이라 생겨 넣은 것이라 한다. 묘비 뒤에는 김남조 시인의 글이 눈길을 끈다.

 

용인문학순례길, 당신이 주인입니다

 

길은 살아 있다. 용인 문학순례길 역시 망자(亡者)의 길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길이다. 우리는 그 길 위에서 약천 선생을 모시고 목월 선생을 만났으며, 육당과 영랑을 만나 박완서의 소설을 읽었다.

 

이번 용인 문학순례길을 통해 용인은 문학의 불모지가 아닌 우리 문학의 튼튼한 뿌리가 되기를 바란다. 다만 아쉬운 것은 발품 외에는 작가들의 흔적을 쫓을 수 있는 여건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관리직원의 안내 없이는 찾아갈 수 없는 묘소, 같은 길을 쳇바퀴 돌든 빙빙 돌아야 했던 시간들. 여기에 작은 이정표 하나, 작가의 안내 표지판 하나만 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문학순례길에 동참하겠는가. 또한 문학적 고증 없이 행정 편의주의로 세워진 문학비에서 숱하게 발견되는 오자(誤字)와 오류(誤謬)를 보면서 용인시의 문화 정책도 새롭게 정립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