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쓰는詩

이화동 연가-안영선

안영선 2013. 12. 17. 07:48

 

 

이화동* 연가


안영선

 

 


강물처럼 굽은 사이로 이국의 언어가 흐른다
지류의 끝은 다닥다닥 붙은 골목이다
강물을 따라 배꽃[梨花] 대신 가난한 기억이 피어 있다 
굽은 길이 바람을 지고 낙산을 오른다
바람을 업은 마을 하나 층층이 계단을 쌓는다
아버지의 아버지는 말한다
지상과 멀어질수록 세상을 잘 볼 수 있다
가게 앞 노인 몇이 막걸리 병을 세고 있다
하얀 종지 속 굽은 멸치도 막걸리 병을 세고 있다
주인이 달력에 지불되지 않은 이력을 적는다
이국의 언어가 투명 렌즈로 마을을 기억한다
낯선 시선도 이따금 막걸리 병을 세고 있다
굽은 길 구르던 막걸리 병 휘파람을 분다
휘파람 소리 낙산 성곽을 도는 순라꾼을 닮았다
휘파람은 굽은 길을 돌고 또 돈다
오후 들며 모퉁이 집 화단에 늦은 가을이 핀다
천사를 닮은 꽃이 골목에서 천사를 몰아낸다
평상에 앉은 노인이 햇볕을 따라 자리를 옮긴다
이국의 언어가 노인의 햇살을 기웃댄다 
이국의 시선이 소란스럽게 무리지어 빠져나간다
이화동엔 어제보다 더 추운 밤이 찾아든다 


* 서울시 종로구 낙산공원 아래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