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쓰는 편지 - 11|봄밤|김수영
봄밤
김수영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 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
지금은 김수영 시인을 호명해야 하는 시간. 봄밤, 시인은 당부인지 명령인지 모를 첫 문장을 적습니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무엇보다 서두름을 경계하라는 뜻이겠지요. 그리고는 “혁혁한 업적”도 “바라지 말라”고 말합니다. 삶의 목적을 출세에 두는 이들은 서늘하겠군요.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당황하지 말 것,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그렇다면 시인의 숨겨놓은 재산은 무엇일까요. 바로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 그 온몸에 “오오 봄이여”라는 탄식과 환희가 담겨 있답니다. 온몸의 시학이 전하는 “오오 인생이여”. 이렇듯 봄밤은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 인의 생활과/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일 때, “서둘지 말라”는 목소리가 들려오겠지요. 파국의 세계에서 서두르지 않기, 이를 위한 방법적 태도. 미더운 시인은 말미에 와서야 아껴두었던 이름을 부릅니다. 가만히, 힘차게 부르는 “절제여”. “영감(靈感)”이 되어줄 그 이름이여. 이은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