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쓰는 편지 - 33|속수무책|김경후
속수무책
김경후
내 인생 단 한권의 책
속수무책
대체 무슨 대책을 세우며 사느냐 묻는다면
척 하고 내밀어 펼쳐줄 책
썩어 허물어진 먹구름 삽화로 뒤덮여도
진흙참호 속
묵주로 목을 맨 소년병사의 기도문만 적혀 있어도
단 한 권
속수무책을 나는 읽는다
찌그러진 양철시계엔
바늘 대신
나의 시간, 다 타들어간 꽁초들
언제나 재로 만든 구두를 신고 나는 바다절벽에 가지
대체 무슨 대책을 세우며 사냐 묻는다면
독서 중입니다, 속수무책
우리에게는 인생을 함께 하는 수많은 책이 있지요. 시인은 오늘 단 한 권의 책을 소개하기로 마음먹은 듯 합니다. 과연 책 읽는 시간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내밀한 영역과 관련이 깊겠지요. 그런가하면 책과 혁명의 연관성에 관해 주목할 만한 목소리를 낸 바 있는, 일본의 한 사상가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남기고 있습니다. “읽고 만 이상, 거기에 그렇게 쓰여 있는 이상, 그 한 행이 아무래도 옳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 이상, 그 문구가 하얀 표면에 반짝반짝 검게 빛나 보이고 만 이상, 그 말에 이끌려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이지요. 의외롭게도 시적 주체는 ‘속수무책’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벌어진 일에 대한 대책들만 난무할 뿐, 정작 해결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시국이 떠오르기도 하지요. 아마도 ‘속수무책’의 다른 이름은 ‘진정성’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빼어난 대책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이기 때문이겠지요. 여러 사안들을 밝은 눈으로 읽어내기 위한 노력들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난세일수록 마음의 책을 펼쳐야하는 이유, ‘속수무책’이 ‘모두를 위한 지혜’가 되는 그날까지. 이은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