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詩읽기

시로 쓰는 편지-68|버찌|이정원

안영선 2015. 7. 28. 23:03

 

 

버찌

이정원


파편이 거리에 넘치던 밤 있었다 파편에 찔린 가로등 야위던 밤 있었다 가슴을 다쳐 압박붕대를 감고 앓던 밤

멍들이 자랐다 누르면 고집의 멍울들 울울해 지는 꽃 보면서도 눈치 못 챘다 꽃 진 자리에 산탄이 맺힌다는 걸

떫고 시큼한 주기율표의 원소들처럼 나란히 나란히, 서로 같은 듯 다른 표정으로 나란히 나란히, 산탄은 언제 터질지 몰라

멍이 익어갔다 속으로부터의 반란이었다 달거리의 시간 달이 차오를 때 꽃피는 혓바늘처럼

한 시절이 불쑥불쑥 터지고 있었다 멍들이 으깨지며, 앓고 난 발바닥을 깨물며 낙관을 찍고 있었다 검은 피의 날이 보도블럭으로부터 올라올 때

숨겼던 산탄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때론 가슴에서 꺼내기도 했다 검은 피의 목록들이 피어났다

 

 

 

벚나무의 열매, 버찌. 시인은 오늘의 시를 통해 과거와 미래를 말하고 있습니다. 파편과 압박붕대의 나날. 멍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도처에 자리한 산탄들이 그려집니다. 사회라는 공동체는 구성원의 연대감을 필요로 합니다. “서로 같은 듯 다른 표정으로 나란히 나란히” 선 구성원들 말이지요.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건, 잊어버린 건 ‘속으로부터의 반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한 시절은 “불쑥불쑥 터지고”, 터질 것입니다. 꽃들이 아무도 모르게 허공에 피어나는 것처럼. 버찌와 같은 멍들이 익어가고, 그 “멍들이 으깨지며” 보도에 낙관을 찍습니다. 시인은 이를 ‘검은 피의 날’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검은 피의 날’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숨겼던 산탄을 주머니에서 꺼”내야할 때는 언제나 ‘지금’이겠지요. 우리의 참조점이 되어줄 체 게바라는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라고 말했지요. 버찌처럼 붉게 익은 마음으로! 이은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