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詩읽기

시로 쓰는 편지-86ㅣ세 스님ㅣ이승훈

안영선 2016. 1. 26. 07:20

 

 

세 스님

이승훈

먹물 옷 입고 겨울 모자 쓰고 등에는 배낭메고 젊은 스님 셋이 돌다리 밟고 어디 간다. 겨울 안거 마치고 어디로 가는 세 스님. 첫 번째 스님은 흐르는 물 보고 손은 비구옷에 숨기고, 뒤에 오는 스님은 고개 숙이고 검은 장갑 끼고 모자는 스님 모자, 세 번째 스님은 꼿꼿이 서서 돌다리 건넌다. 물은 흐르고, 집은 보이지 않고, 우물도 보이지 않는다. 흐르는 물은 무슨 말을 하고, 세 스님은 어디로 가는가. 아침 햇살이 내린다.

 

 

 

한 겨울 개울물처럼 맑고 시린 풍경이 여기 있습니다. 이승훈 시인은 ‘그냥 쓴다’라고 말한 바 있지요. 아마도 그건 이유 없음의 이유일 것. 그 ‘무심’만이 동력이며 목적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볼 때 시인에게 시는 깨달음의 과정 그 자체. 과연 세 스님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요. 그들은 도반. 물은 흐르는 것으로 무슨 말인가를 건네고, 젊은 스님들은 묵묵히 걷는 것으로 대답하고 있습니다. 이 시를 바르트가 보았다면, 무언어의 상태가 곧 깨달음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겠지요. 그는 오늘의 시인과 같이 불교적 사유에 대한 사유의 증식, 즉 잉여적인 기의의 보충을 일종의 장벽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시인이 창조해낸 시공간을 마주한 우리의 일은, 이 무한한 텍스트를 어떻게 열고 닫을까 즐겁게 궁리하기. 이은규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