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詩읽기

시로 쓰는 편지-109ㅣ꽃잎ㅣ차성환

안영선 2016. 9. 7. 22:27



꽃잎

 

차성환

 

꽃잎을 뜯으면서 나는 비늘이 돋고 꽃잎을 뜯으면서 비린내 나는 꽃잎의 살점을 삼키고 꽃잎은 입 속의 혀처럼 내 안에 피고 지고 나는 꽃잎 속에 있고 꽃잎은 낯설게 꽃잎의 이름으로 불러줄 것처럼 가만히 꽃이 잎으로 달려가 꽃잎이 되고 꽃잎을 뜯으며 꽃잎은 사라지고 나는 꽃잎이 자라는 방식으로 슬퍼지고 바닥에 주저앉아 쓰러진 꽃잎의 자리를 외우는데

 

이제 아무도 꽃잎이 자라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꽃잎은 여기 서서 꽃잎은 내 몸속의 꽃잎은 숨을 가두고 나는 강물처럼 꽃잎을 삼키고 꽃잎은 가만히 나를 뜯어 꽃잎이 지는 하늘에 꽃잎은 꽃잎으로 꿈꾸는 방법을 누군가에게 배우고 꽃잎이 꽃잎으로만 남을 수 있게 나는 지는 꽃잎을 불러 모아 여기 소름 돋은 꽃잎을 입술에 피워 무는 꽃잎, 꽃잎



환절기, 가고 있는 절기와 오고 있는 절기의 동시적 시간. 백일 동안 붉다는 꽃나무도 이제는 뒷모습을 보이고 있네요. 얼마나 애틋한 마음이기에 백일 동안 붉을 수 있을까요. 백일홍의 꽃말은 인연’. 어쩌면 세상의 모든 꽃은 같은 말을 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과연 인연은 우연적 필연일까요. 필연적 우연일까요.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부질없는 물음은 알맞은 때 거두는 것이 좋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시인은 가는 절기가, 붉은 꽃잎이 서러워 꽃잎에 대해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제 아무도 꽃잎이 자라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을까요. 문득 기억 투쟁이라는 말을 떠올려 봅니다. ‘여기 소름 돋은 꽃잎을 입술에 피워 무는 꽃잎, 꽃잎’. 그 꽃잎에 가만히 어리는, 맴도는 한 사람의 이름. 

이은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