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쓰는詩

병윤네 무인마트 - 안영선

안영선 2018. 4. 14. 06:01






병윤네 무인마트

    

 

안영선

 

 

서천사거리 모퉁이에는 가게가 있어

한 계절을 듬뿍 진열한 가게가 있지

문을 열거나 닫지 않는 가게가 있어

바람과 햇살이 먼저 들르는 가게가 있지

어느 날은 비와 눈발로 가게가 북적이기도 했어

원하는 계절을 구입하려면 직접 계산을 해야 돼

잔돈은 거슬러주지 않으니 금액을 잘 맞춰야지

계산통 앞에는 동그란 거울이 하나 놓여 있더군

나를 쏙 빼닮은 주인이 계산대를 지키고 있어

거울 앞에서 잠시 미적거리는 나를 보았지

영하 15도가 넘는 날도 병윤네 무인마트는 문을 열더군

그런 날은 계절 채소 대신 한 줄기 햇살과

싸늘한 냉기가 진열장을 가득 채웠어

이따금 소복이 쌓인 함박눈을 파는 날도 있었지

입춘이 지나고 우수 경칩이 오면

병윤네 무인마트에도 봄이 찾아올 거야

빈 의자에 그림자를 벗어 걸쳐놓은 주인은

냉이를 캐거나 입맛 돋우는 씀바귀를 준비하겠지

오늘도 발끝이 가게 앞을 소소하게 서성이고 있어



- 2018년 [딩아돌하] 봄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