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쓰는詩

안영선-텃밭 가꾸기

안영선 2023. 7. 24. 15:03

텃밭 가꾸기

 

안영선

 

 

그것은 숭엄한 장례일지도 모른다

 

생기 잃은 영혼을 위한 정갈한 의식

봉분마다 하관을 준비하는 땅이 열리고

무심하게 던져진 영혼 위에 뿌려진 흙은 묵언 중이다

 

틈틈이 영혼의 숨결을 살피러 온 고라니 사이

꽃마리, 강아지풀, 쇠비름, 쇠뜨기, 민들레, 명아주, 방동사니, 들깨풀, 중대가리풀, 개비름, 닭의장풀, 개망초, 질경이, 조뱅이, 뽀리뱅이……

애꿎은 것들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

 

땅속에서 문드러진 씨감자는

자신의 낡은 육신을 다 내놓고서야

비로소 지상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한참의 시간을 흘린 불면의 궤적

지상을 뚫고 나오는 저 연록의 생을

환생이라 불러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