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詩읽기

[주영헌]-신도림역을 지나 다시 사당으로

안영선 2011. 7. 23. 12:21

 

신도림역을 지나 다시 사당으로 / 주영헌

 

 

 

 

두더지처럼, 지하를 헤매다 지상으로 올라오면 습관적으로 고개를 들게 되지

달콤한 햇빛 아주 잠시 맛볼 수 있잖아

하지만 달콤함이란 그렇게 쉽게 맛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씀바귀 뿌리에서 찾는 것이 더 빠를 거야

 

신도림이야 다시 지하로 들어가는 길

어둠이라고 외쳐봐 검은 터널이, 검은 길이 발밑에서 흘러가지

어둠을 잠시 흔들어 깨우는 지상의 역들

몇 번을 뻥하고 터져버린 허공의 틈 사이 어둠이 보일 거야

어둠 속에서는 눈감아도 눈 떠도 모두 동색이지

 

너, 계속 머리를 꾸벅이고 있지

그렇게 인정하고 싶은 것이 많겠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지

순장된 공기들을 폐에 가두고 날아오르고 싶지

세상은 허공으로 가득 차 있으니까

숨을 한번 크게 쉬어봐, 허공이 너의 폐 속에 가득 담기지

혈관 속에 허공이 떠돌기 시작하면 몸이 가벼워지기 시작하지

이제 네가 하늘로 날아갈 준비가 됐다는 것

네 동공에서 시작된 비행이 터널을 뚫고 지상으로 그리고

신도림역을 지나 다시 사당으로

다음 정거장은 어디지

하늘, 아니면 네 외투 속의 구름 벌판

그곳에서도 스크린 도어는 잘 열릴까

하지만 알고 있니? 내 눈은 이미 어둠 속에서 닫혀 버렸다는 것

어느 시대에 순장된 종족인지는 아니?

 

*『시에』2010년 가을호

* 주영헌 : 충북 보은 출생. 2009년 『시인시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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