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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송 경 동
어느 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 하지 않겠느냐고 찾아왔다 얘기 끝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
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오?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 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 하지 않았다
십 수 년이 지난 요즈음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다물결에 밀리고 있고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 걷어차인 좌판과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2003년, 대추리 논바닥에서 처음 송경동을 만났다. 그리고 지금껏 필자는 그와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사소하고 낡고 연약한 것들을 사랑하기로서니 어느 시인이라고 다를까마는, 그의 행동과 말과 시는 서로 다르지 않았다. 대추리,
기륭전자, 콜트 콜텍, 용산 재개발지구 등 억압받는 이들의 싸움터에 늘 그가 있었고, 그로 인해 詩와 예술이 삶의 현장에서 함께 할 수 있었다.
詩가, 예술이 꼭 현실에 복무할 필요는 없으며 필자의 생각도 크게 다르진 않다. 그러나 예술과 시민이 부조리한 현실을 외면했을 때, 그 사회는
惡의 영역에 편입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惡은 머지않아 당신 집 대문의 초인종을 누르게 될 것이다. ■ 박후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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