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을 주는 시 한 편-56|오동나무 아래서|안주철 | ||||
| ||||
-->
오동나무 아래서
안 주 철
오동나무 아래서 비를 피하고 있으면
엄마는 아궁이에
부뚜막 옆에는 석유풍로가 있어
하루하루 굵어지는 그 나무
하지만 굵은
나무가
오동나무 아래서 비를 피하고 있으면
늦가을 집을 짓지 못한 누에처럼
여름내 비만 내리고, 그리하여 모든 이의 생이 젖은 채로 저물어 가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삽 한 자루와 당신의 미래를 바꾸었다. 당신은 평생 동안 삽질을 할지언정 자식들만큼은 세상에 나가 ‘삽질’ 하지 마라 말씀하시며 삽 대신 가능성이 무한한 책 보따리를 들게 하셨다. 이쯤에서, 자,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 무엇을 쥐어줄 것인가. 아이들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어차피 남겨줄 돈 같은 건 없다. 오래 전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시던 해 겨울, 철없이 바쁜 청춘은 며칠 동안 집에 들어가질 못했다. 어떻게 아셨는지, 아버지는 시내 다방에서 시화전을 열고 있던 철부지를 찾아오셨다. 어깨에 쌓인 눈을 툭툭 털어내시며, 아버지가 꺼낸 첫 마디가 ‘밥은 먹고 다니니?’였다. 아버지가 된 나 역시 아이들과 가끔 통화를 할 때 가장 먼저 묻는 말이 ‘밥은?……’이다. 밥은 그냥 밥일 뿐이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먹이자는데 뭔 ‘밥그릇 싸움’이 그리도 치졸하고, 또 장렬하게 산화들을 하시는지. ‘부뚜막 석유풍로 뒤 흙벽의 그을음’을 모르는 나이들도 아닐 텐데. ■ 박후기 시인 |
'좋은詩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울림을 주는 시 한 편-58|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베르톨트 브레히트 (0) | 2014.01.05 |
---|---|
울림을 주는 시 한 편-57|쓸쓸한 환유|이성목 (0) | 2014.01.05 |
울림을 주는 시 한 편-55|어머니 생각|이시영 (0) | 2014.01.05 |
울림을 주는 시 한 편-54|간 장|하상만 (0) | 2014.01.05 |
울림을 주는 시 한 편-53|나 비 4|이 안 (0) | 2014.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