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랑봉*
김지원
오름의 이마를 짚는 달의 얼굴이 창백하다
사철 꽃을 피우던 신(神)들의 고향,
하늬바람을 막아주는 설문대 할망의 걸작,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산 6번지
삼나무 가지마다 핏빛 울음이 걸렸다
웡이자랑, 웡이자랑,
밤이면 선수머셋굴**을 떠도는
어린 아기 잠재우는 어미의 노래,
날아가던 산 까마귀도 차마 고개를 떨군다
유채꽃 만발하던 그 해 사월,
수상한 회오리 바람이 마당을 기웃거리던 그날,
죄목도 모른 채 부른 배를 안고 토벌대에 끌려간 내 어머니,
쉬, 입을 열지않는다
물기 잃은 송장 풀의 가는 배내똥,
짝 잃은 검정 코 고무신 한 짝,
한때는 몸이 있었다는 흔적을 알릴 뿐,
오랜 시간, 기억의 꼬리를 물고 꼬리를 감추었던 바람,
오늘은 달을 물고 또 사라진다
봄을 잃은 월랑봉(月郞峰) 은 몸 져 누웠는데,
*다랑쉬 오름
**오름 남쪽 기슭에 있는 굴
<제1회 제주평화문학상> 시부문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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