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판 3
정재학
판서를 할 때 가끔 칠판에 비친 아이들의 얼굴에
씌어진 글자들이 보일 때가 있다.
―우리는 나쁜 친구를 사귀지 말라는 교육만 받았지.
그 친구를 올바르게 이끌어주라는 교육은 받지 못했다.
돌아보면,
아이들의 얼굴이 쓱싹쓱싹 지워지고 있다.
시인의 ‘흑판’ 연작시 중 하나입니다. 그가 현직 교사라는 사실이 시를 이해하는데, 일정한 도움을 주겠지요. 시적 주체는 말합니다. “판서를 할 때 가끔 칠판에 비친 아이들의 얼굴에/씌어진 글자들이 보일 때가 있다”고 말이지요. 도처에서 들려오는 문제들의 원인이 다음 문장에 담겨있습니다. “우리는 나쁜 친구를 사귀지 말라는 교육만 받았지./그 친구를 올바르게 이끌어주라는 교육은 받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한 사회의 표정이 일그러질 때마다,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게 됩니다. 넬슨 만델라는 “교육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말했지요. 우리 “아이들의 얼굴이 쓱싹쓱싹 지워지고 있”는 풍경이 교실마다 가득합니다. 이에 대해 이재훈 시인은 “흑판 연작은 환상적 이미지를 통해 고통 받는 아이들의 교실을 환기”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러면서 부정하고 싶은 진실을 전하는데요. “어쩌면 이 풍경들은 환상이 아니라 가장 극적인 현실인지도 모른다”는 것. 흑판처럼 어두운 오늘을 돌아보게 하는 시적 목소리. 우리가 덧붙여야 할 문장은, 인본주의의 오늘이여 마땅히 오라. 이은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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