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
김민정
예컨대
미용실 옆자리에 앉은 여대생이
가수 현미처럼 파마해주세요라고 주문할 때
예컨대
택시를 타고 남가좌동 명지대를 가는데
서울31바9896 남진우 기사 이름이 하필 그럴 때
예컨대
베이징 올림픽 남자 핸드볼 경기에서 해설자가
조지효 선수 참 좋지요라고 말장난을 칠 때
예컨대
쿠싱증후군에 걸린 둘째 이모 양미미 씨가
아침에 짠 스웨터를 밤에 죄다 풀며 죽어갈 때
세상은 수많은 ‘예’들로 가득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컨대’라는 말을 쓰게 되는데요. 만약 “미용실 옆자리에 앉은/여대생이/가수 현미처럼 파마해주세요라고 주문할 때” 우리는 의아해 하겠지요. 그런가하면 “서울31바9896 남진우 기사 이름이 하필 그럴 때”도 있답니다. 남진우 시인은 명지대 교수. 우연인 듯 우연 아닌 우연 같은 ‘예’라고 할 수 있지요. 텔레비전을 보다 미소 짓기도 합니다. “해설자가/조지효 선수 참 좋지요라고 말장난을 칠 때” 우리는 압니다. 한 마디의 말이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는 걸. 여기까지의 ‘예’가 일상의 무게를 덜어주었다면, 마지막 ‘예’는 우리에게 먹먹함을 안겨줍니다. “양미미 씨가/아침에 짠 스웨터를 밤에 죄다 풀며 죽어갈 때” 그 앞에서 함부로 허무를 말할 수는 없겠지요. 시인의 산문 속 문장이 이해를 돕습니다. “시 쓸 게 없어 못 쓴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그럼요. 시는 삶 도처에 있습니다. 언제든 삶이 질문하면 콜!하고 대답해야하는 게 우리의 몫이니까요. 이은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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