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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詩읽기

시로 쓰는 편지 - 58|아침을 기리는 노래|문태준

by 안영선 2015. 5. 21.

 

 

아침을 기리는 노래

문태준


시간은 꼭 같은 개수의 과일을 나누어 주시네
햇볕, 입술 같은 꽃, 바람 같은 새, 풀잎 같은 잠을

나는 매일 아침 샘에 가 한통의 물을 길어오네
물의 평화와 물의 음악과 물의 미소와 물의 맑음을

내 앞에는 오늘 내가 고를 수 있는 물건들이 있네
갈림길과 건널목, 1월 혹은 3월 혹은 9월 혹은 눈송이, 첫 번째, 분수의 광장, 거울
그리고 당신

당신이라는 만남
당신이라는 귀
당신이라는 열쇠

 

 

 

일교차가 큰 요즘입니다. 꽃도 사람도 각방을 쓰지 않는, 봄과 여름에 어리둥절해 하는 것 같지요. 꽃놀이도 좋지만 한 사람의 안색을 살피는 일이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최근 출간된 문태준 시인의 시집『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창비) 자서에 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을 만날 수 있지요. “대상과 세계에 솔직한 말을 걸고 싶었다. 둘러대지 말고 짧게 선명하게”. 어쩌면 시는 ‘삶에 말 걸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상이 모여 일생이 되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아침은 언제나 새날이지요. 혹여 눈 뜨는 순간 행복하다 행복하다, 주문을 외우는 이가 있다면 가만히 토닥이는 수밖에 다른 도리는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내가 고를 수 있는 물건들이 있네”라는 문장을 정반대로 읽어보는 건 어떨까요. 내가 고를 수 없는 것들, 그중에 제일은 “당신이라는 만남/당신이라는 귀/당신이라는 열쇠”라고 말입니다. 고를 수 없기에 취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의 이름, 당신. 이은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