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집 연가
김종경
허기진 수화를 주고받던 젊은 남녀 잔치국수 한 그릇 주문하더니 안도의 눈빛 건네고 있다
하루 종일 낯선 시선들 밀쳐내느라 거칠어진 손의 문장(文章)들은 국수 가락처럼 풀어진 때 늦은 안부에도 목이 메어 오고
후루룩 후루룩 국수발을 따라 온 몸으로 울려 퍼지던 저 유쾌한 목소리들 세상 밖 유배된 소리들이 국수집 가득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면 연탄난로 위에 모인 이국의 모국어들도 노랗게 익어 갈 것이다
혹여, 누구라도 이 집이 궁금해 찾아가려거든 낮달 같은 뒷골목 가로등 몇 개쯤 통과해야 한다 또 다시 막다른 슬레이트집 들창문을 엿보던 접시꽃 무리지어 고개를 주억거리고 누군가의 발자국보다 개 짖는 소리가 먼저 도착해 온 동네를 흔들 것이다
거기 푸른 문장들을 뽑아 삶아내는, 오래된 연인의 단골 국수집이 웃고 있을 것이다
여기 아름다운 풍경이 있습니다. 멀리서 가까이서 들려오는 국수집 연가. ‘허기진 수화’라니 그건 마치 ‘소리 너머의 음악’을 떠올리게 하지요. 오늘의 연인에게 잔치 국수 한 그릇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왜 모든 ‘늦은 안부’는 우리를 먹먹하게 하는 걸까요. 언젠가 우리 그 국수집에서 만나요. ‘낮달 같은 뒷골목 가로등’을 지나 만나요. 문득 백석의 <국수> 이야기, 그는 국수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었지요. 김종경 시인의 시작(詩作) 역시 ‘푸른 문장들을 뽑아 삶아내는’ 과정일 것 같습니다. 우리가 만날 수 있기를. 국수집에서 그리고 오고 있는 미래에서. 이은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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