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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詩읽기

감동이 있는 시-6ㅣ화음을 어떻게든ㅣ박라연

by 안영선 2019. 2. 18.

화음을 어떻게든


박라연


 

어머니! 겨울이 코앞이네요

저는 세상이 모르는 흙, 추운 색을 품어 기르죠

길러낸 두근거림을 따서 바칠게요

개나리 다음엔 수선화 그다음엔 꽃잔디로 붉게

채워질 때쯤 눈치 챌까요?

꽉 찬 이 두근거림을

 

여울진 꽃잔디에 목이 더 길어진 수선화는

군락으로 번지며 나비처럼 날아요 시름을

찾아내 바꿔치기하죠


(.......)

  

화엄은 너무 멀겠죠? 화음이라도

어떻게든 보여주려고 사람 몸에 꽃을 보낸신 것

나팔꽃 채송화 분꽃으로 와서 가늘고 낮은

야근하는 손을 잡는 것

 

그 마음 그대로 가을에 넘겨 줄래요

눈시울 붉어지면 백일홍을 보면서 느껴요 가을의

꽃은 가장 먼 곳부터 두근거리는 가을 햇살인 것

 

근심을 씨앗으로 바꾸는

저 해바라기와 그늘 아래서는 세상을 더는

욕하지 않을래요

어머니!

  



박라연은 폐가와 무덤의 수가 마을 사람 수보다 점점 많아지는 산골마을로 이사 해 살고 있다. 폐가의 벽을 뚫어 창을 내고 토라진 땅을 삽질하고 호미질 해 일구어 꽃 천지로 바꾸었다. 「화음을 어떻게든」은 그 꽃밭의 이야기다. 그녀가 호명하는 ‘어머니’는 백수를 누리고 계신 시어머니일 것이지만 이 시에서는 대지로 읽힌다. 대지가 주는 기쁨과 감동과 감사와 두근거림이 곳곳에 묻어나는 작품이다. 겨울이 품고 있는 언 흙 속의 두근거림은 개나리와 수선화와 꽃잔디다. 이어서 터지는 수선화는 시름을 잊게 하고 꽃 핀 세상은 화엄이지만 저 아름다운 꽃천지는 화음인 것이 분명해서 사람의 몸들로 치환되는 것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더는 세상을 욕하지 않겠다는 박라연 시인이다. 김윤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