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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詩읽기

감동이 있는 시-21ㅣ신돈을 굽다ㅣ이원오

by 안영선 2019. 3. 31.

신돈을 굽다


이원오


 

동네 어귀 신돈 연탄구이 가게는 성황이다


주인은 적당히 익힌 초벌구이 고기를 내온다

통통한 두께가 입맛을 돋운다

쫀득한 비계는 유혹적이다

탐욕스런 기름이 뚝뚝 떨어진다

중독된 가스만큼의 혀를 마취시킨다

껍질의 검게 탄 부분은

상처가 된 마음의 일부이다

연탄불은 금방이라도 베일 듯이 파란 검이다

검은 신돈을 베었고 민초를 위한 마음도

함께 베었다

검의 용도는 고기를 자르는 데 있는데

신돈에게는 그의 목을 치는데 용도가 있었다

고기를 먹지 않아도 고고해진다는

어느 종파의 습속은 통하지 않는다

잘 씹히는 고기는 언제든지 회자된다

신돈을 요승으로 만든 역사서가 잘게 씹히고 있다


신돈이 슬프게 웃고 있다


 

이원오의 첫시집 『시간의 유배』는 역사적 사실을 새롭게 해석하고 그 해석 위에 시인의 상상력과 서정을 단호한고 유려하게 입힌다. 정사가 시인을 만나 어떻게 오류의 그늘을 벗어나는지를 보여주는 그의 시는 유쾌하고 경이롭고 신비롭다. 그러면서도 가볍지 않고 둔중하다. 그의 이번 시집이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다른 시집들과 구별되어야 하는 이유다. 그러므로 시인이 새로운 지점에 자신의 시세계를 펼치기 위해 얼마나 고투했는지를 느끼게 한다. 「신돈을 굽다」역시 그의 이러한 작의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연탄불에 돼지고기를 굽는 가게의 풍경은 아직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뒷골목 허름한 가게의 현실적인 풍경이다. 연탄가스에 중독되는지도 모르면서 고기를 굽고 소주를 마시고 하루의 잡다한 일들을 떠올리며 담소를 나누고 거나해지면 유행가 한 자락을 펼칠 수 있는 떠들썩하고 매케하고 유쾌한, 그러나 우울하고 적막하고 외로울 수도 있는 공간에서 시인은 돼지고기를 모티프로 신돈을 불러온다. 돼지라는 의미의 돈(豚)과 신돈의 돈(旽)은 음이 같을뿐 의미는 다르지만 그의 상상력 속에서 두 돈은 등가인 사물이거나 인물이다. 연탄불은 파란 검이어서‘신돈을 베었고 민초를 위한 마음도 함께 베어졌다’고 노래한다. 역사의 오류를 바로잡는 문장이다. 신돈이 슬프게 웃는 것은 그의 신원이 완성되었다는 의미다. 김윤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