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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詩읽기

[김종경] 첫눈 오던 날

by 안영선 2009. 8. 4.

첫눈 오던 날 / 김종경

 

 

그는 매일 재활용품 가득 쌓인

4층 복도 구석으로 신문지를 가지러 왔다

유효 기간이 끝난 세상의 일들과

크고 작은 생애들을 곱게 펴서 허기 누르듯 꾹꾹 밟아 묶었고

지상의 리어카에서 계단 오르내리기를 서너 차례,

그의 일상은 단단한 허공을 밟고 오르내리는 것

 

눅눅한 폐지더미 위에 쪼그려 앉아 신문지 덮인 빈 그릇들을 엿보던 늙은 허기는

누군가의 시선에 짓밟혀 폐지더미 속으로 묶여 버릴 때도 있었다

 

첫눈 오던 날

삐걱거리던 허공이 갑작스레 무너졌고, 잠시 후 그의 인생이 한 장의 폐지처럼 확 펼쳐졌다

 

지상에 떨어지던 눈발들도 한 장의 폐지처럼 재빨리 수습되어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2008년 『불교문예』 하반기 신인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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