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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詩읽기

[주영헌] 호수 빌라

by 안영선 2009. 8. 4.

호수 빌라 / 주영헌

 

 

 

빌라 한 채가 호수 한가운데로 이사를 왔다.

맨 처음 길은 불화에서 소통으로 가려고 했던 것 같다

떠들썩한 집들이가 끝나고

새로 생긴 빌라엔 올 해 만도 몇 사람이 입주를 했다

꽁꽁 닫힌 한 여름 창문 속에서 외출도 하지 않는 사람들

손잡이가 없는 현관, 흐릿 번져가는 입구

누구도 지나 온 시절이 번지지 않은 사람은 없다

똑똑 두드리는 소리를 먹어치우는 집

그 집 앞으로 이어지는 길은

이어졌다 끊기기를 반복한다.

물고기도 사람도 구름도 같이 뛰어 노는 길

버드나무가 긴 잎사귀로 빌라 주위를 비질하고 있다.

 

고요가 품고 있는 집 들

점심나절 한 바탕 소나기가 지나간 후

끊겼던 길이 다시 연결 됐다.

수면 속에 숨어있던 창문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여름 장마가 묻어 있는 유리창을 닦아내고

오래된 얼굴 하나가 창문을 연다.

햇볕을 쬐지 못해 핏기 없는 얼굴, 나뭇잎 한 장이 떨어진다

잠시 멍한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에 닫혀 버리는 창문

바람의 무늬 밑으로 숨어버리는 얼굴.

 

아무런 공력 없이 만들어진 이 건물은 작은 바람에도 구겨진다

잎들이 둥둥 떠 있는 계절에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을

이 집에는 무게가 없는 사람들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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