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빌라 / 주영헌
빌라 한 채가 호수 한가운데로 이사를 왔다.
맨 처음 길은 불화에서 소통으로 가려고 했던 것 같다
떠들썩한 집들이가 끝나고
새로 생긴 빌라엔 올 해 만도 몇 사람이 입주를 했다
꽁꽁 닫힌 한 여름 창문 속에서 외출도 하지 않는 사람들
손잡이가 없는 현관, 흐릿 번져가는 입구
누구도 지나 온 시절이 번지지 않은 사람은 없다
똑똑 두드리는 소리를 먹어치우는 집
그 집 앞으로 이어지는 길은
이어졌다 끊기기를 반복한다.
물고기도 사람도 구름도 같이 뛰어 노는 길
버드나무가 긴 잎사귀로 빌라 주위를 비질하고 있다.
고요가 품고 있는 집 들
점심나절 한 바탕 소나기가 지나간 후
끊겼던 길이 다시 연결 됐다.
수면 속에 숨어있던 창문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여름 장마가 묻어 있는 유리창을 닦아내고
오래된 얼굴 하나가 창문을 연다.
햇볕을 쬐지 못해 핏기 없는 얼굴, 나뭇잎 한 장이 떨어진다
잠시 멍한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에 닫혀 버리는 창문
바람의 무늬 밑으로 숨어버리는 얼굴.
아무런 공력 없이 만들어진 이 건물은 작은 바람에도 구겨진다
잎들이 둥둥 떠 있는 계절에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을
이 집에는 무게가 없는 사람들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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