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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詩읽기

[김종경] 이국소녀에 대한 기억

by 안영선 2009. 8. 4.

이국소녀에 대한 기억 / 김종경

 

공장 굴뚝은 여전히 근엄하고 탐욕스럽다, 이국의 새벽을 싣고 가는 사람들

 

(45번 국도를 지날 때면, 나는 망가진 추억의 공사를 시작한다. 세상 반대편 하늘을 돌아왔을 고단한 태양이 안개에 젖었을 때, 그들은 반나절 작업 시간이 끝난 후에야 소녀의 행방을 묻기 시작했다.)

 

그날 새벽 발작 난 안개 덩어리는 필리핀 소녀를 범했고,

가냘픈 비명 소리만 경안천 둑방을 뒹굴다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고 했다

안개의 늪에 빠져 버린 이국 소녀는 불법 체류자라는 딱지 때문에 저항하지 못했고,

신고조차 못했다는 소문이 안개를 흔들었다

안개가 사라진 후에도 그들은 한동안 침묵했다

 

이곳은 더 이상 신비의 땅이 아닐 진데,

그들이 떠나면 또 다른 그들이 깊은 안개의 늪으로 몰려온다.

 

 

김종경 : 경기 용인 출생.

2008년 『불교문예』신인상으로 등단

현재 용인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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