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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詩읽기

[박완호] 들꽃 여관에 가고 싶다

by 안영선 2009. 8. 4.

들꽃 여관에 가고 싶다 / 박완호

 

 

들꽃 여관에 가 묵고 싶다

 

언젠가 너와 함께 들른 적 있는 , 바람의 입술을 가진 사내와 붉은 꽃의 혀를 지닌 여자가 말 한 마디 없이도 서로의 속을 읽어 내던 그 방이 아직 있을지 몰라. 달빛이 문을 두드리는 창가에 앉아 너는 시집의 책장을 넘기리. 三月의 은행잎 같은 손으로 내 中心을 만지리. 그 곁에서 나는 너의 숨결 위에 달콤하게 바람의 음표를 얹으리. 거기서 두 영혼의 안팎을 넘나드는 언어의 향연을 펼치리. 네가 넘기는 책갈피 사이에서 작고 하얀 나비들이 날아오르면 그들의 날개에 시를 새겨 하늘로 날려보내리. 아침에 눈뜨면 그대 보이지 않아도 결코 서럽지 않으리.

소멸의 하루를 위하여, 천천히 신발의 끈을 매고 처음부터 아무 것도 아니었던 나의 전부를 남겨 두고 떠나온 그 방. 나 오늘 들꽃 여관에 가 다시 그 방에 들고 싶다.

 

2003년 『리토파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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