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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詩읽기

[이은규] 속눈썹의 효능

by 안영선 2009. 8. 4.

속눈썹의 효능 / 이은규

 

 

때로 헤어진 줄 모르고 헤어지는 것들이 있다

 

가는 봄과

당신이라는 호칭

가슴을 여미던 단추 그리고 속눈썹 같은 것들

 

돌려 받은 책장 사이에서 만난 단어, 속눈썹

눈에 밟힌다는 건 마음을 찌른다는 것

건네준 사람의 것일까. 아니면 건네 받은 사람

온 곳을 모르므로 누구에게도 갈 수 없는 마음일 때

깜박임의 습관을 잃고 초승달로 누운

 

지난봄을 펼치면 주문 같은 단어에 밑줄이 있고

이미 증오인 새봄을 펼쳐도 속눈썹 하나 누워 있을 뿐

책장을 넘기는 바람에도 날아가지 않은

출처 모를 기억만 떠나는 방법을 잊었다

 

아지랑이의 착란을 걷다

눈에 든 꽃가루를 호 - 하고 불어주던 당신의 입김

후두둑 떨어지던 단추 그리고 한 잎의 속눈썹

언제 헤어진 줄 모르는 것들에게는 수소문이 없다

벌써 늦게 알았거나 이미 일찍 몰랐으므로

혼자의 꽃놀이에 다래끼를 얻어 온 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것은

온다는 역설처럼 당신의 입김 없이도 봄날은 간다

 

화농의 봄 다래끼

주문의 말없이 스스로 주문인 마음으로

한 잎의 기억을

당신 이마를 닮은 차가운 돌멩이 사이에 숨겨 놓고 오는 밤

책장을 펼치면 속눈썹 하나 다시 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올 거라 믿는 꽃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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