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이야기

박후기 시집 - [내 귀는 거지말을 사랑한다](창작과비평사)

by 안영선 2009. 8. 23.

박후기 시집의 두번째 시집이 출간되었습니다. 축하와 많은 홍보를 부탁드립니다.

책소개

2006년 첫시집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로 제24회 신동엽창작상을 수상한 박후기 시인의 두번째 시집. 한층 서정성이 짙어진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비루한 삶의 기원과 기반을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으며 끝끝내 부여잡고 가는 처연한 경험의 시학을 보여준다. 삶의 비애와 진실이 담긴 쓸쓸한 풍경들이 사뭇 인간적이고 진실한 감동을 남긴다.

첫시집에서 미군부대로 상징되는 유년의 기억을 집요하게 반추하며 어둠과 허기와 가난으로 점철된 애잔한 풍경을 절절하게 그려낸 바 있는 시인은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에서 그 반추의 시선을 더욱 깊이 그려내며 존재의 근원에까지 가닿는다. 또한 그의 사랑시편은 화려한 수사에 기대기보다 평이한 어조로 일관하면서 낭만이나 감상과는 거리를 둔 인간적인 온기를 전한다. 처연한 분위기가 시집 전체에 퍼져 있음에도 독자들은 그의 시 속에서 따뜻한 기운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소개

저자 : 박후기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 200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내 가슴의 무늬」 외 6편의 시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가 있으며, 2006년 제24회 신동엽창작상을 수상했다.

목차

제1부

미산/크레바스/왜가리/비박/철거/폐광/불법체류자들/채송화/6번 혈관/꽃 진 자리/반월/묵/사십세/배춧잎 미라/입원/은진

제2부
난간에 대하여 /소금 한 포대/유전자 트래킹/제석봉에서 이별하다/화분 요람/식물원에서/천장(天葬)/국수/사람의 아들
껍질/소녀들/빈집/서강의 품 안에 드는 일/소금쟁이 사랑

제3부
사랑/자반고등어/냄새 타령/이부자리 별/꿀벌 사원/민들레 문상/흔적들/내린천/비늘/괄호/막잔/꽃 택배/숯가마 앞에서
대구탕/지퍼/접족례/퇴행성관절염/자미원역에서

제4부
꽃기침/보이저 2호/겨울 수숫대/라면을 끓이며/주문진 근처/상사화 편력/다랑쉬오름/실업자/거미와 사내/석류와 석유

해설│엄경희
시인의 말

출판사 리뷰

생의 불우함을 그러안는 처연한 경험의 시학

2006년 첫시집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로 제24회 신동엽창작상을 수상한 박후기 시인의 두번째 시집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가 출간되었다. 한층 서정성이 짙어진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비루한 삶의 기원과 기반을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으며 끝끝내 부여잡고 가는 처연한 경험의 시학을 보여준다. 삶의 비애와 진실이 담긴 쓸쓸한 풍경들이 사뭇 인간적이고 진실한 감동을 남긴다.
인상적인 첫시집에서 그는 미군부대로 상징되는 유년의 기억을 집요하게 반추하며 어둠과 허기와 가난으로 점철된 애잔한 풍경을 절절하게 그려낸 바 있다. 이 시집에서 그 반추의 시선은 더욱 깊어져 존재의 근원에까지 가닿는다. “나는/가난한 어머니가/소파수술비만 구했어도/이 세상에 없는 아이”라고 고백할 때 이미 생명은 죽음과 다르지 않고, “엄마는 동생을 또 지웠다/(…)/죽은 동생들이/노란 오줌과 함께/쏟아져나왔다”고 그려질 때 출산은 배설과 같다(「채송화」). 그리하여 “사과나무에겐/꽃 핀 자리가 똥구멍이다/(…)늘어진 살가죽/몸 안으로 잡아당기느라/얼굴 점점 붉어지고,/사과에겐/꽃 진 자리가 똥구멍이다”(「꽃 진 자리」)라는 일견 생경한 비유는 오히려 절실한 의미를 지니고 다가온다. 아버지는 또 어떤가. “검은 입 벌린 채 눈감”은 아버지의 생은 “발밑을 파내려가도 눈앞엔 검은 벽, 바닥은 어느새 궁륭이 되었다/아버지는 앞만 보고 살았지만, 언제나 뒤가 무너졌다”는 캄캄한 바닥으로 형상화된다(「폐광」). 그리하여 시인에게 바닥은 단단한 기반이 아니라 언제 무너질지 몰라 위태로운 허공과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


아스팔트 도로가 폭삭 주저앉았다. 지나가던 자동차가 구덩이 속으로 처박혔다. (…) 아스팔트 포도는 한동안 공중에 떠 있었다. 자동차는 그곳이 바닥인 줄 알고 달렸다. // (…) // 고상돈은 매킨리봉 크레바스에 빠져죽었다. 자일에 매달려 날개가 꺾인 채 발견되었다. 나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사는 것인지, 올라가기 위해 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새들이 나는 곳이 모두 하늘은 아니었다.(「크레바스」 부분)


하여 시인은 땅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허공을 유랑하며 살았다. 허방을 딛는 삶, 그는 “한순간도 머물지 못하고 날아가는 새의 그림자, 같은 시간을 살았다”고 고백한다. 허공과 유랑이 새의 이미지를 통해 합치된다. 그러나 정확히는 새가 아니라 ‘새의 그림자’이고, 그러니 늘 “그림자는 허공에 뜬 나보다 먼저 진흙탕 속에 발을 담갔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사십세」). 새와 그림자가 한몸이 된, 죽은 새의 모습이 시인에게 심상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등산로 가시덩굴 숲/새 한 마리/엎드린 채 죽어 있다/(…)/하늘에 제 무게를 벗어놓고,/새 한 마리/기어서 산을 내려간다”(「천장天葬」). 하늘이 곧 무덤이고 이 세상의 바닥이므로, 시인의 마음이 떠도는 곳은 어디나 바닥인 것이다.


바닥과 지붕은 다르지 않다/집이 무너지면/지붕도 바닥이 되고/바닥도 지붕이 된다//(…)//빈집이 무너진 자리,/어느 별의 지붕이자 세상 가장 밑바닥에서/몸을 잃은 사람들이/모래알 같은 생쌀을 씹는다(「철거」 부분)


어디 시인뿐이겠는가, 바닥이 곧 허방인 사람이. 그래서 시인의 시선은 자꾸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향한다. ‘생사고락이 뿌리박았던 자리가 폐허로 변한’ 철거민, ‘두 눈에 수심이 가득 찬’ 외국인노동자,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자본에 매인’ 해고노동자, ‘다리를 절며 불 켜진 집으로 돌아오는’ 실업자. 그들의 불우와 비애의 토대가 자신의 그것과 다르지 않음을 시인은 이미 몸으로 직감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불우한 초상을 그리는 시인의 시선에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돌이켜보는, 자신의 생을 들여다보는 다른 시편들에서와 다르지 않은 진정성이 배어 있다.
그림자 또는 생의 바닥을 들여다보는 일은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보는 일과 같다. 시집에서 그것은 눈에 띄게 자주 사랑시의 외양을 띠고 나타난다. 하지만 그의 사랑시는 기쁨보다는 대체로 지나간 사랑을 돌이키는 쓸쓸함과 비애의 정서를 짙게 깔고 있다. 지나간 유년을 가난과 어둠의 기억으로 불러내었듯, 지나간 청춘을 멀리 있는 사랑의 모습으로 되새기는 것이다. “어차피 네게로 가는 길도 지워졌으리라”(「비박」) “어째서 모든 뒷모습은/눈앞에서 사라지는지/알 수 없었다”(「제석봉에서 이별하다」) “나는 가끔/태양계 저편에서 전화를 걸었지만/당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보이저 2호」) 시인에게는 과거도, 미래도 너무 멀리 있다.


안녕이라고 말하던/당신의 일분이/내겐 한 시간 같았다고/말하고 싶지 않았다/생의 어느 지점에서 다시/만나게 되더라도 당신은/날 알아볼 수 없으리라/늙고 지친 사랑/이 빠진 턱 우물거리며/폐지 같은 기억들/차곡차곡 저녁 살강에/모으고 있을 것이다(「사랑의 물리학」)


그의 사랑시편은 화려한 수사에 기대기보다 평이한 어조로 일관하면서 낭만이나 감상과는 거리를 둔 인간적인 온기를 전한다. 처연한 분위기가 시집 전체에 퍼져 있음에도 그의 시는 그 속에 따뜻한 기운을 품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저 사랑시편들처럼, 그의 시는 정교한 장치와 수사의 힘을 빌리지 않고 생에 직핍하는 자세만으로 씌어져 있기 때문이다. 자신과 주변부 인생들의 삶의 기반을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가만히 들여다보듯, 그렇게 섣불리 뜨거워지거나 차가워지지 않는 온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저 멀리 차갑게 지나가버렸더라도 말이다(“너를 생각하면/얼어붙은 뺨보다 가슴이 더 시리지만,/사랑을 잃고 산길을 헤매는 사람끼리/체온을 나누어갖는 밤도 슬프진 않다”-「비박」).
그리고 그 온기가 시인을 앞으로 계속 나아가게 한다. ‘실의에 빠진 두 발이 번갈아가며 각오를 다지게’ 한다(「사십세」). 추운 날 국수 한 그릇처럼 그를 다시 일으켜세운다. 그러는 한 우리는 앞으로도 그의 시가 ‘비극적 황홀과 비극적 기쁨의 세계’에서 ‘새로움의 향기’로 ‘한국현대시의 지평을 넓히는’ 광경(정호승 ‘추천사’)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늦은 밤/눈 내리는 포장마차에 앉아/국수를 말아먹는다/국수와 내가/한 국자/뜨거운 국물로/언 몸을 녹인다/얼어붙은 탁자 위에서/주르륵/국수그릇이 미끄러지고,/(…)/부침개처럼/술판이 뒤집어진다/엎어진 김에/쉬어가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막차가 도착하기 전/미혹에 걸려 넘어진 마음/다시/일으켜세워야 한다(「국수」 부분)
  

추천평

박후기의 시는 새롭다. 소위 ‘미래파’의 세례를 받아서 새로운 게 아니라, 사물과 현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그만의 진지하고 신선한 눈이 있어서 새롭다. 그에게 있어 ‘기타줄은 기타의 핏줄’이며, ‘사과나무에겐 꽃 핀 자리가 똥구멍이다’. 묵을 먹으면서도 그는 ‘연약을 매만지는 법을 배운다’고 하지 않는가. 한국전통시의 본질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새로움의 향기를 내뿜는 그의 시는 분명 한국현대시의 새로움의 향기다. 그 향기의 진원지는 바로 우리 삶의 비극이다. 그의 시는 비극의 구체성에서 피어난 슬픈 꽃이다. 그 꽃은 슬프지만 따스하고 아름답다. 그것은 그가 비극을 비극으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비극적 황홀과 비극적 기쁨의 세계에 깊이 가닿아 있다. 손가락으로 비극의 바윗덩어리를 꾹 눌렀을 때 묵묵히 번져나오는 맑은 눈물의 진액, 그것이 바로 박후기의 시다. 그는 앞으로 한국현대시의 지평을 넓히는 중요한 시인으로 거듭날 것이다. - 정호승(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