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 박후기
- 어느 시인의 장례식
죽음도 저장의 한 방식,
땅 속이든 불구덩이든 온전한
죽음으로 저장되기 위해서는
뼈만 남아야 한다
구릉의 무덤가 비석도
앙상하게 뼈만 남았다
지워진 비문엔
달랑 이름 석 자,
그마저 흐릿하여
음각에 고인 빗물이
잠시 머물다 갈 틈 없다
시인이 죽었다
묵은 향이 뼈를 사르며
절을 하듯 고꾸라진다
죽은 시인의 시에서
약 냄새가 난다
시인의 향기만 남았다
시구에 불 들어간다
火葬場 전광판에 명멸하는 이름처럼
시 또한 뼈만 남아야 한다
화부가 시인의 뼈를 추스린다
뼈만 남은 언어를 추스린다
모든 수사가 사라졌을 때,
죽음이 비로소 간결한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계간 『신생』 2010년 봄호 발표
박후기 시인
1968년 경기도 평택에서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내 마음의 무늬〉 외 6편의 작품을 발표하며 등단.시집으로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실천문학사, 2006)와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창비, 2009) 가 있음. 2006년 제24회 신동엽창작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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