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 소녀 / 박후기
나는 아르바이트 소녀,
24시 편의점에서
열아홉 살 밤낮을 살지요
하루가 스물다섯 시간이면 좋겠지만
굳이 앞날을 계산할 필요는 없어요
이미 바코드로 찍혀 있는,
바꿀 수 없는 앞날인 걸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봄이 되면 다시 나타나는
광장의 팬지처럼,
나는 아무도 없는 집에 가서
옷만 갈아입고 나오지요
화장만 고치고 나오지요
애인도 아르바이트를 하는데요,
우린 컵라면 같은 연애를 하지요
가슴에 뜨거운 물만 부으면 삼 분이면 끝나거든요
가끔은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러 이 세상에 온 것 같아요
엄마 아빠도 힘들게
엄마 아빠라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지 몰라요
아,
아르바이트는
죽을 때까지만 하고 싶어요
월간 『현대시』 2010년 5월호 발표
박후기 시인
1968년 경기도 평택에서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 200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내 마음의 무늬〉 외 6편의 작품을 발표하며 등단.시집으로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실천문학사, 2006)와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창비, 2009) 가 있음. 2006년 제24회 신동엽창작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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