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게 타오르는 / 이은규
몇 점 눈송이가 겨울을 데리고 왔다
편백의 숲으로
여독에 물든 것들은
왜 추운 바람 냄새를 묻히고 다니는 걸까, 관성처럼
기다리는 안부는 멀고
희망이 가장 먼저 죽는다는 말을 의심해 보기로 한다
두고 온, 나를 잊을 수 없다
편백나무의 기억을 기억하는 어느 화가처럼
어둠일수록 별을 아끼는 이유
다가올 문장들이 기록된 문장들의 주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주석에의 동경보다 오독을 즐겨할 것
언제일까, 스스로 귀를 자른 문장의 때는
두통의 잉여를 달래는 요법
이마에 물먹은 편백나무 한 조각 올려놓는다
피톤치드 피톤치드,
소리 없이 속삭이는 별들
두고 간, 화집 속엔 차갑게 타오르는 편백나무 몇 그루
여독의 몸이 보내온
추운 바람 냄새가 닿을 것 같은 밤, 관성처럼
기다리지 않는 안부는 가깝고
희망이 가장 나중에 죽는다는 말을 의심해 보기로 한다
죽음보다 더 나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까
요법의 겨울 도처에서
계간 『문학동네』 2009년 겨울호 발표
이은규 시인
1978년 서울에서 출생. 광주대 문예창작과 및 同 대학원 졸업. 2006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어 등단. 2008년 《동아일보》 시부문에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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