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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詩읽기

[이은규]-차갑게 타오르는

by 안영선 2010. 10. 26.

 

 

 

 차갑게 타오르는 / 이은규

 

 

 

 

  몇 점 눈송이가 겨울을 데리고 왔다

  편백의 숲으로

 

  여독에 물든 것들은

  왜 추운 바람 냄새를 묻히고 다니는 걸까, 관성처럼

  기다리는 안부는 멀고

  희망이 가장 먼저 죽는다는 말을 의심해 보기로 한다

 

  두고 온, 나를 잊을 수 없다

  편백나무의 기억을 기억하는 어느 화가처럼

 

  어둠일수록 별을 아끼는 이유

  다가올 문장들이 기록된 문장들의 주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주석에의 동경보다 오독을 즐겨할 것

  언제일까, 스스로 귀를 자른 문장의 때는

 

  두통의 잉여를 달래는 요법

  이마에 물먹은 편백나무 한 조각 올려놓는다

  피톤치드 피톤치드,

  소리 없이 속삭이는 별들

  두고 간, 화집 속엔 차갑게 타오르는 편백나무 몇 그루

 

  여독의 몸이 보내온

  추운 바람 냄새가 닿을 것 같은 밤, 관성처럼

  기다리지 않는 안부는 가깝고

  희망이 가장 나중에 죽는다는 말을 의심해 보기로 한다

 

  죽음보다 더 나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까

  요법의 겨울 도처에서

 

 

 

 계간  『문학동네』 2009년 겨울호 발표

 

 

 

 이은규 시인

  

1978년 서울에서 출생. 광주대 문예창작과 및 同 대학원 졸업. 2006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어 등단. 2008년 《동아일보》 시부문에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