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I 판독記
안영선
내 몸의 내면을 들여다 본 적이 있었어
수많은 탐욕이 뼈의 후미진 곳에 더덕더덕 붙어 있더군
엑스레이 예리한 눈도 피한 비밀이었지
척추가 애욕의 촉처럼 기우뚱하게 휘어져 있었어
뭐, 그 정도야
4번과 5번 요추 사이가 발기한 성욕처럼 튀어 나왔지
이건, 좀 흥미로운데
담당 의사는 내 몸을 보더니 짜릿한 전율을 느끼더군
그의 관음증이 내 몸의 이면을 훑고 있었지
속내를 드러내는 일은 자위를 들킨 것만큼 부끄러운 일이야
내 몸의 단면이 나이테를 닮았다더군
눈으로 새긴 것들이 차곡차곡 나이테를 채웠을 텐데
그는 발기한 것들을 요추추간판탈출증이라 부르더군
욕망은 잘라낼 필요가 있다고 하지만
내 질곡한 생의 흔적 오롯이 놓치기는 싫었어
더 이상 발기하지 않도록 신경주사를 맞으라 했지
이제 내 척추 일부는 식물인간처럼 살게 될 거야
참, 우습지
벌써 내 사랑도 무뎌지기 시작했어
(계간 <시작>, 2014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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