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좋은詩읽기

시로 쓰는 편지 48 -|외계(外界)|김경주

by 안영선 2015. 2. 11.

 

 

외계(外界)

김경주



양팔이 없이 태어난 그는 바람만을 그리는 화가(畵家)였다
입에 붓을 물고 아무도 모르는 바람들을
그는 종이에 그려 넣었다
사람들은 그가 그린 그림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붓은 아이의 부드러운 숨소리를 내며
아주 먼 곳까지 흘러갔다 오곤 했다
그림이 되지 않으면
절벽으로 기어올라 가 그는 몇 달씩 입을 벌렸다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색(色) 하나를 찾기 위해
눈 속 깊은 곳으로 어두운 화산을 내려보내곤 하였다
그는, 자궁 안에 두고 온
자신의 두 손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화가가 있습니다. “양팔이 없이 태어난 그”의 이야기인데요. “바람만을 그리는” 예술가의 고뇌를 쉽게 짐작할 수 없겠지요. “입에 붓을 물고 아무도 모르는 바람들을/그는 종이에 그려 넣었”답니다. 숨겨놓은 마음들을 허공에 그려 넣듯. 당연하게도 “사람들은 그가 그린 그림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붓은 아이의 부드러운 숨소리를 내며/아주 먼 곳까지 흘러갔다 오곤 했”답니다. 한 장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절벽을 기어오르는 화가 그리고 그의 입.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색(色) 하나를 찾”으려는 화가가 있습니다. 언어의 미로를 헤매는 시인이 그를 가만히 바라보네요. 놀랍게도 “그는, 자궁 안에 두고 온/자신의 두 손을 그리고 있었던 것”. 혹은 ‘외계’에 두고 온 기억일지도. 이은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