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의 고을에서 만나는 선비의 삶
- 지훈 조동탁 -
안 영 선
주실마을로 가는 길
시인 조지훈의 문학비는 전국에 산재되어 있다. 서울 남산공원에 있는 시비 <파초우>를 비롯하여 고향인 영양군 주실마을에 있는 시비 <빛을 찾아 가는 길>, 칠곡군 다부동의 전적기념관에 있는 시비 <다부동에서>, 구례 화엄사 앞 시의 동산에서 만나는 <승무>, 그 외에도 제주 조각공원, 부산 낙동강 제방, 고려대학교 교정과 광주공원에서 그의 시비를 만날 수 있다. 이렇게 여러 지역에 문학비가 세워져 있다는 것은 시인 조지훈이 그 만큼 많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역시 조지훈 시인의 참모습을 찾아보기 위해서는 경북 영양을 빼놓을 수 없다. 영양은 시인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시인이 젊은 시절 문학도로서의 역량을 키우며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양심 있는 학자요, 지조와 절개를 지닌 고고한 선비의 삶을 살게 한 초석이 된 곳이기도 하다.
흔히 경북 영양은 문향의 고을이라 한다. 영양의 영산인 일월산의 정기를 받아 충의열사와 많은 문인, 유학자를 배출한 유서 깊은 선비의 고장이기에 붙어진 이름이리라. 청록파 시인으로 한국 문단을 이끌어 온 조지훈 시인을 비롯하여 애국지사로 항일운동의 선봉에 섰던 오일도 시인, 그리고 현대 소설문학의 거장인 이문열은 바로 이 곳 영양이 배출한 작가들이다. 그 외에도 이병각 시인을 비롯한 많은 작가의 산실이 된 곳이기도 하니 과연 영양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영양은 아직까지도 고향의 풋풋한 풀 냄새를 간직하고 있어 좋다. 어린 시절 고향 마을에서 멱을 감고 물고기를 잡던 추억이나, 주인 몰래 콩서리를 하여 개울가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입 주위가 새까맣게 되도록 콩을 주워 먹던 추억이 떠올라 여행객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한다. 중앙고속도로가 완공되면서 서울에서 7시간 남짓 걸리던 영양을 요즘에는 4시간 정도면 찾아갈 수 있다. 서안동 나들목을 빠져 나와 수려한 아름다움을 지닌 임하댐을 따라 34번 국도를 달리다 보면 영양과 영덕으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영양으로 가는 31번 국도를 타면 된다. 영양읍은 다른 시․군의 소재지와 달리 매우 작은 것이 인상적이다. 그래서 더 고풍스러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학의 산실이 된 주실마을
청록파 시인으로 해방 후 한국 시단을 이끈 조지훈 시인의 고향인 주실마을을 찾아가는 길은 유난히 정겹다. 영양읍을 지나 가을걷이가 한창인 31번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도로 양 옆으로 벼베기에 여념이 없는 농부들의 모습도 볼 수 있고, 배추밭에서 지푸라기로 포기를 묶는 아낙네의 모습도 쉽게 발견할 수 있어 시골 마을의 소박한 정취가 묻어난다. 그렇게 승용차를 타고 5㎞ 남짓 달리면 일월삼거리(도계삼거리)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봉화 방향으로 난 918번 지방도로를 따라 약 2.5㎞ 정도 더 달리면 오른쪽으로 매방산 자락에 포근히 안겨 있는 전통 한옥마을인 주실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마을 입구에서 가장 먼저 여행객을 맞이하는 것은 주곡 숲에 자리 잡은 시인의 시비 <빛을 찾아 가는 길>이다. 나무숲 사이로 난 작은 오솔길로 접어들면 조지훈 시비 안내판과 함께 1982년에 세워진 시비를 만나게 되는데 주변 풍광과 잘 어우러져 한층 멋스러움을 더한다. 시비에 새겨진 글귀를 따라 손길을 더듬어 본다. 햇볕을 받아 따뜻해진 비문 사이로 대쪽같은 선비의 삶을 살다간 시인의 숨결이 느껴져 가슴이 설렌다. 시비 옆으로는 어린 시절에 시인이 자맥질하고 놀았을 맑은 개울이 주실마을을 휘감아 돌아 흐르고, 길 건너 쪽에는 조지훈 시인의 형인 세림(世林) 조동진의 시비 <국화>가 세워져 있다. 작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선 시비는 고향마을을 지키는 파수꾼 마냥 듬직하다. 형인 조동진은 조지훈이 어린 시절에 시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문학적 역량을 키워준 스승인 동시에 함께 마을 문집인 [꽃탑]을 펴내기도 한 문학의 동반자였다. 두 형제 시인의 시비는 서로를 마주보며 도란도란 어린 시절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으리라.
돌뿌리 가시밭에 다친 발길이
아물어 꽃잎에 스치는 날은
푸나무에 열리는 과일을 따며
춤과 노래도 가꾸어보자.
빛을 찾아 가는 길의 나의 노래는
슬픈 구름 걷어가는 바람이 되라.
- 시비 <빛을 찾아 가는 길> 중에서 -
주실마을로 들어가는 마을 어귀는 두 곳이다. 하나는 시비가 있는 숲 바로 옆으로 난 작은 다리를 건너 월록서당 쪽에서 들어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비를 지나 큰 도로를 따라 700m 정도 더 가면 나타나는 <조지훈 생가 마을> 안내판을 따라 주실교를 건너는 것이다. 주실교를 건너면 오랜 수령을 자랑하는 느티나무가 곱게 물든 채 개울 둑방길에서 마을을 지키고 있어 이 마을의 유구한 역사를 가늠하게 한다. 주실마을은 북쪽으로 높이 솟아 있는 영산인 일월산의 정기를 고스란히 받은 전통마을이면서도 실학자들과의 교류, 개화와 개혁으로 이어지는 진취적인 문화를 간직한 유서 깊은 마을이라고 전한다. 마을의 유구한 역사를 새삼 거론하지 않더라도 전통마을의 웅장한 종택을 보면 과연 조지훈의 고향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지훈 시인의 생가인 호은종택(壺隱宗宅)은 마을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주실마을에는 유난히 한옥집이 많지만 그리 크지 않은 마을인 데다가 한양 조씨의 집성촌이라 생가를 찾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호은종택(壺隱宗宅). 당당하게 우뚝 선 솟을대문 안으로 고색창연한 ㅁ자형의 기와집. 이 곳이 바로 가장 한국적인 전통과 고전적 이미지를 시로 형상화시킨 시인 조지훈이 태어난 곳이다. 대부분의 지자체가 영리적인 목적을 추구하며 역사적 고증도 없이 엉성하게 복원한 문인들의 생가를 많이 보아온 터라 호은종택의 그 웅장함과 전통적인 아름다움에 잠시 말문을 잊고 역사의 시간 속으로 흠뻑 젖어든다.
조지훈 시인이 태어난 호은종택은 약 370년 전인 조선 중기 인조 때에 지은 것으로 6․25전쟁 중에 일부 소실되었던 것을 1963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고고한 선비 정신이 살아 숨쉬는 이 호은종택은 경상북도 지방기념물 제78호로 지정되어 후손들이 관리하고 있는데 솟을대문 앞에는 1996년 11월에 한국문인협회가 세운 문학표징비가 있어 시인의 생가임을 알려주고 있다. 또 생가에는 조지훈 시인 태어난 태실이 그대로 남아 있어 많은 문학도들의 필수 여행코스가 되고 있다.
조지훈 시인의 생가 옆 공터에 ㅁ자형의 한옥으로 지어진 조지훈 시인의 문학관이 자리잡고 있다. 연건평 170평 규모의 지훈문학관은 전통한옥 형태로 4개의 전시실과 시청각실 등을 갖추고 있는데 선생의 육필원고와 시집 등을 확보하고 전시하고 있으며 조지훈 시인의 가계도와 많은 사진 자료, 영상 자료 등을 관람할 수 있다. 시인의 고향에서 또 다른 시인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흥분을 감출 수 없다. 조지훈 시인의 삶과 문학을 만나기 위해 문학을 사랑하는 학생들의 발길이 주실마을로 이어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지훈문학관의 옆으로는 지훈시공원이 꾸며져 있다. 주실마을의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면서 20여점의 조지훈 시비를 만나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어 답사객에는 더없는 즐거운이 된다. 단지 아쉬운 것은 이런 일련의 작업들이 지자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순수한 문학적 가치는 배제되고 여행객을 끌어드리기 위한 상업적인 면만이 강조되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무분별하게 세워진 시비들은 오히려 조지훈 시인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주실마을에는 조지훈 시인이 어린 시절에 수학한 월록서당이 있다. 생가 오른쪽 매봉산 자락에 위치한 월록서당은 1765년에 한양 조씨, 양성 정씨, 함양 오씨의 세 가문이 중심이 되어 주실마을의 자녀들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서당이다. 조선 후기에는 실학의 영향을 받아 교육의 대중화를 위한 서당이 전국적으로 건립되었는데 주실마을에도 이 월록서당이 건립되어 교육의 중심을 이루게 되었다. 조지훈도 어린 시절에 이 곳에서 수학을 하였는데 한학뿐만 아니라 조선어, 역사 등을 통해 학자와 문학가로서의 소양을 쌓아 후에 조지훈의 독특한 시세계를 확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2006년 《용인문학》10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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