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혹은 반역이었으니 / 김윤배
페테르브르크 감옥은 바다를 등지고 있다
눈썹 창으로 어둠이 찰랑인다
감옥에 갇힌 어둠은 말이었다
돌침대 위에 누워 있는 상처투성이의 말들
어떤 말도 걸어서 이곳을 나가지 못했다
내 안에 갇혀 썩고 있던 말을 이감하고
무거운 족쇄를 말의 발목에 채운다
한 때 나였던 말, 지금도 나인 말이
어둠 속에서 눈썹 창을 향해 무릎 꿇는다
내가 말 앞에 무릎 꿇고 싶었다
말 속에서 내가 부패하고 있었으니
페테르브르크 감옥은 나와 말을 치환한다
저 말들이 한 때는 세상을 색깔 위에 놓았다
감옥은 바다에 갇히고
바다는 달빛에 갇혀
은빛으로 가라앉는다
말이었던 혁명투사들
말이었던 보수주의자들
말이었던 시인들
형장으로 걸어 나갈 때 독방에서
피 흘리던 말들의 기억을 쇠문은 지우지 못한다
말은 죄, 혹은 반역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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