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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詩읽기

[주영헌]-위(胃)

by 안영선 2011. 7. 23.

 

위(胃) / 주영헌

 

 

 

 

바람이 나무의 밑동을 치고 있다

나무는 언제 바람을 소화시킬까

반쯤 떨어져 나간 슬레이트 지붕 사이로 소화되지 않는 허공의

면(面)이 낙엽처럼 떨어졌다

 

나무에 胃가 있다면

胃를 가득 채우는 흔들림은 허공의 속성일 것

부유의 존재들로부터 수유하는 수천 장의 바람

뭉쳐진 그늘 밑에서 나는 나무의 연금술을 생각한다

 

당신이 폐라고 생각하는 몸속의 가장 가벼운 곳

그곳, 공기를 먹는 胃가 아닐까요

그렇다면 당신은 나무와 같은 胃를 가졌군요

당신은 사람이란 나무였군요

부드러운 각질 속에 숨긴 무늬는 어느 산의 지도인가요

생각하는 지도

신생과 소멸이 아득히 반복되는 바람의 잎이나

마방이 달고 떠난 고원의 딸랑거리는 종소리 같은 간격

 

더듬어 볼 수 있을까요. 연기가 가리키는 곳도 그곳일까요. 허공의 면과 같은 마을의 적요가 힘껏 늘려 놓은 고무줄 같은 타지. 느슨해진 마을의 남자들

모두 어느 부위에 붙은 위일까요

 

나를 보여주듯 타다만 모닥불 속에서 나무는 잠시 빛나고 있네요

허공을 켜서 붙이는 불

불도 나무와 같은 胃를 가졌군요

 

 

*『시에』2010년 가을호

* 주영헌 : 충북 보은 출생. 2009년 『시인시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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