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을 주는 시 한 편-27|파밭|홍문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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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 밭
홍 문 숙
비가 내리는 파밭은 침침하다
제 한 몸 가려줄 잎들이 없으니 오후 내내 어둡다
비가 내리는 파밭은 어리석다
봄이 갈 때까지 못 다 미행한 나비의 길을 묻는 일은
어머니도 젊어 한 시절
방구석의 우울일랑은 양말처럼 벗어놓고서
언어를 꾸미는 데만 여념 없는 시들이 적지 않다. 경험이 결여된 시는 문장(文章)의 힘으로만 버티게 되는데, 그러한 문장은 대개 현학적이고 사상누각과 같아서 몇 편을 이어가지 못하고 곧 끝을 보고야 만다. 등단하자마자 최후를 맞는 시인들의 작품이 대개 그러하다. 물론, 어떤 미학적 근거도 없이 단지 경험만을 줄줄이 나열하는 시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 201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인 홍문숙(용인 출생)의 「파밭」은 좀 다르다. 다른 작품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경험과 미학, 절제가 조화롭게 맞물려 있다. 요 근래 각종 문예지나 신춘문예 등단작들 중에서도 돋보이는 수작이다. 파밭에 들어가 파를 다듬는 일이 시를 쓰는 일과 다르지 않음을 그 이는 알고 있는 것이다. ■ 박후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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