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몽유도원도
안영선
제발 제발 잠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집 한 권을 골라 머리맡에 놓는다 불면의 눈으로 행과 행 사이 감춰 놓은 여백을 읽는다 활자는 낯익을수록 여느 자장가보다 친숙하다 감춰 놓은 여백 사이 진분홍 향기가 흘러내린다 흘러내린 향기는 도원桃源 어디쯤에서 오는 것일까 연과 연 사이 여백이 만든 계곡을 따라 의식과 무의식 중간 쯤 그 몽롱함이 두렵다 나는 그만 분홍빛 향기에 길을 잃고 만다 골짜기마다 도화 향기 가득한데 바람에 날릴 꽃이 없다 봄볕 가득한데 가슴 채워 줄 온기가 없다 혹독한 허상에 쫓기고 쫓기고 또 쫓기고, 혹은 촛불이 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이따금 벼랑 끝에서 떠밀려 추락하는 데자뷰, 춘몽春夢은 현생보다 더 독한 계절이다
시와 시 사이 여백을 따라 新몽유도원도를 그린다
- 2017년 [문학의 오늘] 봄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