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쓰는詩

어느 변호사의 일기-안영선

by 안영선 2016. 12. 1.



어느 변호사의 일기


안영선



시월의 마지막 날이죠 날씨 맑음
오늘만 되면 라디오 주파수마다 무한 반복되는
쓸쓸하게 그 노래를 들어요
인연은 묶기보다 끊기가 더 어렵다는데
오늘도 두 개의 인연을 끊었어요
억지로 연결된 끈은 불안불안하니까요
너무 고마워해서 오히려 미안해요
요즘은 많이 바빠졌어요
미워하면서 같이 밥 먹고
미워하면서 같이 한 침대에 눕고
미워하면서 같이 자식 앞에서 웃는 사람들
이제 별로 없어요
내일은 상담이 세 개나 잡혔네요
너무 즐겁지만 상담할 땐 절대 웃지 않아요
배려하는 마음이죠
그런데 걱정이 생겼어요
이렇게 끊기만 하면 일이 점점 줄어들 텐데
어쩌죠
내년에는 명함을 바꿔야겠어요
재혼 전문 변호사
내년에도 많이 바빠지겠죠
그들이 정말 고마워 할까요



- 2016년 <용인문학> 27호 -

'내가쓰는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케일링-안영선  (0) 2017.03.10
新몽유도원도-안영선  (0) 2017.03.10
바다 횟집-안영선  (0) 2016.12.01
가마우지-안영선  (0) 2016.09.29
롤러코스터-안영선  (0) 2016.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