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우지
안영선
새 한 마리 햇볕에 날개를 말리고 있어
날개는 잔혹한 사치였지
나일론 끈에 묶인 동료는 아직도 물질 중인데
낡은 시계 찬 어부는 여전히 침묵 중이야
아침부터 축축하게 젖은 날개
부리와 목젖 사이 비릿하게 젖은 생이 몸부림쳤어
노동의 대가는 비린 기억과 혈흔 선명한 생선 내장
오늘도 잊힌 생 하나 가마우지 뱃속에 유택을 지었지
옛날부터 이 호수 속에는 가난한 새 한 마리 살고 있어
사치스런 날개를 몸통에 바싹 붙인,
발을 지느러미처럼 휘저을 줄 아는,
날렵한 유선 몸매를 가진 새 한 마리 살지
어류의 후미가 입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오늘도 새는 살기 위해 날개를 접었어
내 어릴 적 아버지도 날마다 날개를 접어야 했지
접은 날개를 러닝셔츠 속에 꼭꼭 감추곤 했어
아버지는 집에 돌아와 젖은 날개를 꺼내 말렸지
날개는 언제나 지독한 사치였어
가마우지처럼 날개를 접어야 사는 아버지에게는
- 계간 [문학의식] 2016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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