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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쓰는散文

코로나로 읽는 세상_안영선

by 안영선 2021. 11. 28.

코로나로 읽는 세상

 

 

안영선

 

 

오늘도 나는 현관을 나서기 전에 제일 먼저 마스크를 챙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마치 내 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빼놓은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또한 그 순간에 밀려오는 심리적 불안감은 쉽게 떨칠 수가 없다. 그렇게도 마스크를 잘 챙기던 나는 얼마 전 무심코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했던 경험이 있다. 당황한 상황에서 신속하게 옷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연신 함께 탑승한 사람에게 죄송하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하다가 황급히 엘리베이터를 벗어났다. 그 순간 나는 이 사회의 감염병을 퍼트리는 죄인처럼 움츠러들었고, 이 기억은 트라우마처럼 자리 잡기도 했다.

 

우리는 코로나19라는 팬데믹 시대를 살고 있다. 지난해 시작된 전대미문의 감염병은 그 어느 시대보다 참담한 현실을 맛보게 했다. 전 세계를 누비던 여객기와 여객선은 운항이 중단되었고, 나라마다 차단과 봉쇄라는 극단적인 조치를 단행하면서 고립무원의 세상을 만들었다. 처음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만 하더라도 특정 지역만의 문제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지구적 확산이 이루어지면서 그 어느 나라도 팬데믹의 상황을 벗어날 수 없게 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인류는 언제나 감염병과 치열한 싸움을 벌여왔다. 코로나19 이전, 역사상 최대의 감염병은 중세시대에 발생한 페스트가 아닐까 싶다. 중앙아시아의 지역의 평원에서 시작된 페스트는 비단길이라는 실크로드를 통해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었다고 한다. 흑사병이라고도 불리는 페스트는 발생 후 수십 년 만에 무려 유럽 인구의 40% 정도를 사망케 하면서 중세 유럽을 암울하게 만들었다. 암울한 세상은 곧 죽은 세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페스트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감염병으로는 1918년에 발생한 스페인 독감을 들 수 있다. 이 독감은 전 세계적으로 5~10억 명 정도가 감염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최소 2,500만 명 이상이 사망한 감염병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특히 스페인 독감과 관련하여 우리나라에서도 약 740만 명이 감염되고, 14만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천연두, 신종플루, 메르스, 사스, 에볼라바이러스 등 수많은 감염병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해 왔다.

 

나는 30여 년간 교육공무원으로 재직 중이며, 현재도 한 고등학교에서 교감으로 근무하고 있다. 교직 생활 중에 2009년 신종플루를 경험했고, 2016년에는 화성 지역에 근무하면서 메르스의 직격탄을 맞기도 했다. 특히 메르스 때에는 학교가 열흘 이상 휴업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긴장 속에 생활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러나 2020년 시작된 코로나19는 그 무엇보다도 강렬했다. 2020년 나의 봄은 유난히 우울했다. 교정에 개나리, 벚꽃, 목련이 피고 지는 중에도 사랑스러운 제자들은 학교에 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지침에 따라 휴교와 휴업이 반복되면서 수업일수까지 감축하는 특별한 대책을 세웠지만, 우리가 느끼는 현실은 더 참담하고 암울했다. 나는 부족한 마스크를 확보하기 위해 출생연도에 맞춰 월요일마다 약국 앞에 길게 줄을 서야 했고, 품절인 손 세정제를 찾아 늦은 시간까지 동네 마트를 헤매야 했다. 학교에 오지 못한 학생들은 원격수업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교육 방법에 적응해야 했다. 모두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내가 근무하던 교육 현장도 어수선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들은 새로운 형태의 수업과 온라인 생활지도의 어려움을 말하기 시작했고, 학생들은 수업 참여도가 뚝 떨어지면서 가정에 방치되는 경우가 많았다. 학부모의 불만은 학교와 교사를 대상으로 삼았고, 교사들은 콜센타의 상담원처럼 학부모와 학생들의 전화 상담에 매달리며 유난히 길어진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교감인 나는 보건교사와 중심이 되어 발열 체크기, 체온계 등을 준비하여 학생들의 등교 시 방역 활동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일 년 반이 지난 지금도 학교 현장은 교육과 방역 속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분주하다.

 

코로나19는 많은 것을 사라지게 했다. 대면 활동이 어려워지면서 모두를 설레게 하던 여름 휴가가 사라졌고, 설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도 사라졌다. 동호회나 취미 활동을 위한 모임이 사라졌고, 일요일마다 찾아오던 종교활동이 사라졌다. 어느 순간에 나는 소통이라는 단어를 잊었으며, 인간관계라는 말의 의미조차 희미하게 느껴졌다. 혼행, 혼밥, 혼술 등 혼자라는 단어가 나를 옥죄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나는 세상에 던져진 외톨박이 신세가 되었다. 직장인 학교와 집만을 오가는 시계추 같은 처지가 되었으며, 주말 아침이면 아무도 없는 산길이나 저수지 둘레길을 조심스럽게 찾아 걷는 신세가 되었다. 개인 방역을 철저히 하고 잠시만 참으면 곧 종식될 줄 알았던 감염병은 마른풀에 떨어진 불똥처럼 거침없이 번져가고 있었다. 중국에서 처음 확진자가 나온 이후 일 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전 세계는 아직도 암흑 중이다. 우리나라처럼 국가 수준에서 철저한 방역을 펼치는 국가도 있지만 더러는 국민을 감염병에 노출 시켜 집단면역을 키우려는 국가도 있다. 많은 나라가 국경을 폐쇄했으며 자국 내에서도 지역 간의 이동을 철저히 제한하기도 했다. 국가의 봉쇄조치에 반발하여 억압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찾기 위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이는 나라도 있다. 비록 코로나를 대하는 자세는 다르지만, 각국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다. 이 코로나19 상황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감염병의 출몰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바이러스로 인한 인류의 비극을 보여줬지만, 인간은 생각보다 약한 존재는 아니었다. 어찌 보면 어려운 재난의 시대일수록 더 힘을 발하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황이 어려워지면 어려워질수록 오프라인의 통제된 사회는 자연스럽게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더 견고하게 구축했다. 교육 현장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인터넷 강의처럼 변화하다가, 다시 실시간 쌍방향 수업이라는 획기적인 교육 방법을 만들기 시작했다. 대학이나 기업에서 사용하던 화상 회의가 이제는 최일선에서 교육 현장을 담당하는 막중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내가 근무하는 중학교는 교사들의 대면을 최소화하기 위해 ZOOM이라는 화상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교직원 회의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교과수업도 이 프로그램을 활용하면서 온라인상에서 대면 수업이 가능한 상황을 만들게 되었다. 마치 4차 산업을 기반으로 한 미래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든다.

 

이 신기한 화상 프로그램이 이제는 우리 가족을 하나로 모아주는 튼튼한 매개체가 되었다. 4인 가족인 우리 집은 직장생활을 하는 자녀들과 떨어져 살고 있다. 딸은 서울에서, 공군 부사관으로 근무하는 아들은 멀리 부산에서 생활하고 있다. 코로나 이전에는 한 달에 한 번쯤 집에 오던 아들이 코로나 상황이 심해지면서 외출이나 휴가가 제한되어 부대 내 숙소에서만 생활하게 된 것이다. 우리 가족은 한 달에 한두 번 화상 프로그램을 통해 만나고 있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각자의 장소에서 음료와 간식을 준비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화면에 비친 서로를 보면서 대화를 나누고, 준비한 음료와 간식을 나누기도 한다. 처음에는 사용법을 몰라 어리둥절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능숙한 솜씨로 프로그램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비단 우리 가족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이제는 동호회 활동이나 취미 활동도 실시간 화상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ZOOM 프로그램을 이용해 문학동호회 모임을 하는데 80세 가까운 어르신 회원이 시행착오를 거듭하다가 화상 회의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서 진한 감동을 받았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언택트 시대가 다가온 것이다. 우리는 화면을 통해 상대가 어디에 있든 서로가 원하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위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코로나19가 인류에게 가져다준 것은 감당하기 힘든 재앙이지만, 그 속에 희망의 불씨도 함께 가져다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는 지난 일 년 반 동안 참으로 많은 것을 잃었고, 또 많은 것을 얻었다. 우리 국민뿐 아니라, 온 인류가 겪은 경제적, 심리적 어려움은 분명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IT 강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위기를 잘 대처하는 능력도 보여주었다. 이 능력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 사회 실현을 앞당길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 틀림없다. 지난 2월 말부터 코로나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희망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 코로나 시절을 보내면서 점점 그리워지는 것은 인간의 따뜻한 온기가 아닐까. 온기는 서로 얼굴을 맞대고, 서로 손을 맞잡고, 서로 눈길을 맞출 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종식되는 날이 빨리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 2021년 [용인문학] 27호 -